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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 성 심리, 조누가 / 샘솟는기쁨

샤마임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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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 성 심리

조누가 / 샘솟는기쁨

 

 

[갓피플몰] 성서 속 성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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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한국교회는 성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다. 특히 조선 시대의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에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악’이다. 하지만 성 없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성 없이 교회 성장과 부흥은 언급할 수 없다. 기독교의 시작과 끝은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교회학교가 급 쇠락할 때 한국교회 수많은 목사는 설교 시간에 ‘출산도 부흥이다.’라는 말을 했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그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것이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교회 부흥과 성장의 전제는 성(性)이다. 그런데도 왜 한국 기독교는 성에 대해 이리도 터부시된 것일까? 그렇다면 성경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록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적나라하다. 특히 창세기 안에 유다와 며느리 다 말과의 이야기, 롯과 딸과의 관계는 이런 내용이 성경에 굳이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한다면 우리는 뭔가 다른 차원 또는 다른 관점에서 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인 조누가는 서울대 법대와 장로회 신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숭실대 인문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지도하는 교수도 재직했다. 굉장히 독특한 이력은 이 책을 집필하기에 꽤 유용한 경험과 과정을 지내왔다. 책의 특징은 일반 목회자들이 지도하는 답정너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했지만, 일반 평신도의 관점에서 성서에 접근하고 있어서 일반 교인들이 읽을 때 많은 부분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 유용한 책이다.

축복으로서의 성

 먼저 저자는 성이 하나님의 창조 의도이며, 축복의 도구로 제시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창세기 1장 27~28절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의 전제는 성이다. 그렇다! ‘성은 원래 축복으로 주어진 것’(20쪽)이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아담과 하와의 본질을 죽음과 생명으로 확장한다.

 

“아담은 흙이라는 뜻이고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흙은 인간이 창조된 근원인 동시에 인간이 돌아갈 처소, 즉 죽음을 암시한다.”(21쪽)

 

성의 시작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성경적 원리를 제공한다. 하나는 성원 구부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구분된 성은 하나가 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좀 더 나은 인격체가 되고자하는 욕망’(23쪽)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분명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저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축복의 성이 축복으로 사용되는가 아니면 저주로 돌변하는가를 성경의 성 속에서 찾아 제시한다.

축복과 저주 사이의 성

성경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 문제만큼 풀기 어려운 것도 없다. 비도덕적이고 야한 것을 둘째 치고 천년 가까운 삶을 영위한 아담(930세)을 비롯하여 969살을 산 므두셀라 역시 ‘…을 지내면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선언한다. 즉 죽음 직전까지 성생활을 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들을 건강의 문제와 결부시키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의아하다. 성에 대한 수치심은 타락 직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명시는 사건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후이다. 일부의 신학자들은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를 부여하여 동성애를 강조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성적 수치감은 당대에 여전히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레위기로 들어서면 동선 간의 교합, 짐승 간의 교합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일부일체제를 지지하고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고대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유교 전통 아래 있는 우리나라도 첩이 있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수의 사생아 논쟁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자 주제인 예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은 이단이나 안티기독교의 먹잇감이기도 하다. 그들의 주장은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었으며, 예수는 사생아였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논쟁을 할 필요도 없고 여력도 없다. 다만 우리는 여기는 성경 왜 굳이 그러한 논쟁의 여지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약간의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하게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신약 외경으로 치부되는 <야고보의 원복음서>에 나타난 요셉의 심정을 끌고 와 설명한다. 내용을 보면레위기적 관점에서 마리아를 데려온 요셉의 고충을 풀어나가고 있다. 아마도 바리새파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설을 당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예수의 처녀 마리아 탄생설은 초대교회 당시 많은 오해와 공격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유야 어떻든 신약의 저자들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한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가면서

이 책은 성경의 교리를 설명하거나 진리를 설파하는 목적을 가진 책이 아니다. 은밀하지만 공공연한 성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담론을 솔직하게 풀어낸 것으로 봐야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동안 가져왔던 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이해, 담론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부디 과도하게 경건한 이들이 읽기에는 부담스럽고, 음담패설쯤으로 바라보는 이들 또한 너무나 성경적인 내용에 실망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성에 대한 다양하고도 고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하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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