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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룟 유다의 딜레마> 김기현 목사

샤마임 2012. 10. 24.



내 안의 가룟유다 딜레마

김기현목사의 <가룟 유다 딜레마>를 읽고

 




2006년 필자는 3년의 긴 휴학 때문에 아직 신대원을 졸업하지 못하고 복학하여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다. 바로 그해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부활절을 기점으로 폭탄을 하나 터뜨렸다. 초대교회 당시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유다복음’(The Gospel of Judas)을 공개한 것이다. 콥트어로 기록되었으며, 많은 부분 훼손 되어서 정확한 뜻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몇 가지의 특징들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큰 특징은 성경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웃는 예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의 구속 사역은 가룟 유다에 의하여 주도된다는 것이다. 즉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팔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다복음이 알려지기 전에도 이러한 주장들은 교회의 변두리에서 종종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복음은 그것을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유다복음의 이러한 주장은 구속의 축을 예수 그리스도에서 ‘가룟유다’로 옮겨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축의 이동은 가룟 유다가 없이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수 없으며, 가룟 유다로 인하여 구속이 완성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전통 교회 안에서는 가룟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고 스승을 돈을 받고 팔아넘긴 부도덕한 존재였다. 악의 화신처럼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유다복음은 이러한 전통 교회의 주장에 멋지게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다. 유다복음 이전에도 교회는 ‘다빈치 코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픽션과 현실을 아무런 선도 없이 넘나드는 엉터리 소설책에 전 세계가 흔들렸다. 교회는 다빈치 코드로 인해 적지 않는 타격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 충격이 가기도 전에 유다복음이라는 쓰나미가 몰려 온 것이다. 사실 유다복음은 전해 새로울 것이 없는 영지 주의적 사상을 대표하는 잡서에 불과하다. 문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것과 서구의 많은 매스컴과 교회가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문적으로 취약한 한국교회는 유다복음의 공격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가 재학하던 신대원의 어느 교수도 유다복음에 대한 전문적인 대응이나 반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08년 4월 목회자의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가룟 유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책이 출간 되었다. 수정로교회(현재 로고스교회)에 담임으로 있는 김기현 목사가 <가룟 유다의 딜레마>라는 책을 내 놓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유다 복음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유다복음을 포함합니다. 김기현 목사는 유다복음의 잘못된 관점은 수정하여 ‘가룟 유다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가, 유다복음이 아니라 신약의 사복음서가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또한 ‘가룟 유다를 붙들고 있는 한, 예수를 만날 수 없’고, 예수를 알면 자연스럽게 유다도 해결 된다고 말한다.(9쪽) 유다복음이 정경 안에 들 수 없었던 이유는 ‘영지주의’적 관점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복음은 ‘하나님이 아닌 사악한 천사가 창조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반기독교 적이며, 기독교의 이름을 빙자한 이단적 문서’(12쪽)임을 알 수 있다. 가룟 유다의 딜레마는 창조가 아닌 구속의 원리에 숨겨져 있다.

 

유다복음서가 제기하는 두 번째 문제는 …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에서 차지하는 유다의 역할입니다. 저는 이것을 “유다의 딜레마”라고 부르겠습니다. 유다복음서의 파괴력은 바로 여기에 근거합니다.(19쪽)

 

문제는 단지 영지 주의적이고, 이단적인 문서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유다의 역할이 얼마나 유효한가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 제물로 삼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면 예수를 배신하는 유다는 필연적으로 예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다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정한 유다의 배신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만약 인간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종속 시켜 버린다면 과연 구원의 능동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는 유다와 다르지 않게 되지 않는가? 그렇게 가룟 유다의 딜레마는 시작한다.

 


<유다복음의 일부>


김기현 목사는 가룟 유다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현대교회가 다루지 못하는 몇 가지의 난제들을 풀어 나간다. 자유의지, 신정론, 자살 등의 문제를 과감하게 밀고 나간다. 약간 길지만 먼저 예정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저는 종종 이런 비유를 들곤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장미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가시가 돋쳐 있고, 인간의 자유라는 장미에는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가시가 있다고요. 그래서 예정을 강조하다보면 자유가 가시가 됩니다. 그렇다고 그 가시를 죽 밀어 버리면 아무런 위험도 없지만, 장미 본래의 아름다움은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장미꽃을 사랑하는 자는 그 날선 가시마저도 장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랑의 한 요소로 감내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까이서 보면 둘 사이의 갈등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한데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필자는 장로교단의 목사이다. 칼빈의 예정론을 신봉하는 한 사람으로 예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렇다고 종속을 믿지는 않는다. 루터는 자유의지를 노예 의지론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타락이라는 무능함 속에서 찾아낸 불가피한 결론이다. 수년 전에 칼빈을 연구하는 어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예정론을 미래적으로 풀지 말고 과거론 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내일 내가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미래 예정으로 풀지 않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은 예배하심으로 복음을 듣고 구원 얻게 하셨다’라는 과거론 적으로 풀라는 것이다. 만약 예정론을 미래론 적으로 풀어 가면 인간의 의지는 기계와 같이 프로그램된 노예의지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예정론은 구원에 대한 감사이지 운명을 이미 결정해 높은 종속이 아닌 것이다. 김기현 목사의 탁월한 통찰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장미와 가시라는 불가결한 관계로 풀었다는 점이다.

 

2008년에 출간된 책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물 건너간 주제로 보인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딜레마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때 텔레비전에서는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연이어 방영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이었고,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유명인들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관 위에 시뻘건 십자가가 유난히도 부담스럽게 보였다. 그들의 운구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들은 왜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교회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단 말인가?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룟 유다는 유다의 엘리트였다. 그리고 그는 사도였기에 수많은 이적과 기적들을 행하던 유명인이었다. 그런 그가 허무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해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유명한 복음 전도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했다는 대서특필된 신문을 읽는 것과 같은 당혹감을 준다. 만약 누군가가 와서 ‘어떻게 목사가 자살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가룟 유다의 딜레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후기에 가룟 유다는 ‘바로 나다’라고 결론짓는다. 내 안에 유다가 살고 있는 것이다. 진지하게 삶을 묻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 : 김기현  | 출판사 :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판매가 : 10,000원9,000원 (10.0%, 1,000↓)
배신자 낙인 가룟 유다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성찰하다!가룟 유다는 비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독실한 신자에게도 여러 가지 성가신 질문을 안겨 준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가룟 유다를 예정하시고 사용하신 것일까?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리고 이 일을 예정하셨다면, 연약한 인간이 그 의지를 거스를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에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악인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결국 유다를 둘러싸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이의를 제기한다.그러기에 이 책은 가룟 유다와 그가 썼다는 [유다복음]이 제기하는 여러 가지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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