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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설교] 날로 부흥하는 교회 행2:37-47

샤마임 2013. 10. 27.

날로 부흥하는 교회[각주:1]

행2:37-47

 

 

올해 4월 19일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에서 한국 개신교인의 신앙생활 및 의식수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사람 중 10.5%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소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교회 나가지 않는 이유를 묻자,

△목회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19.6%) △성도들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17.7%) △헌금을 강요해서(17.6%) △시간이 없어서(15.8%) 등으로 답했습니다.

전도 대상은 이웃/친척(47.2%), 친구/선배(42.6%)가 월등히 많았고, 다음은 직장동료(4.4%), 부모(2.5%), 자녀(1.4%), 배우자(1.3%), 기타(0.5%) 순으로 나타나는 등 전도 대상은 주로 가까운 주변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설문 조사의 결론은 이웃이나 가까운 선후배 관계가 90%에 이르며 다른 부류는 거의 전도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교리가 아닌 사람이 싫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이고, 가까운 사람의 삶을 보고 교회를 갈지 안 갈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이유는 다른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더 이상 본받고 존경할 만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전도를 하지 않았다거나, 프로그램이 없고, 지역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오해(誤解)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가 되지 않는 이유는 건물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의 매력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본문을 상고(詳考)하면서 어떻게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말씀이 풍성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불처럼 임하자 제자들이 밖에 나가 각 나라의 방언으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술 취했다고 조롱하자 베드로가 일어나 지금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고, 복음으로 초대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설교를 듣고 회개를 했는데 41절에 의하면 삼천 명이었습니다. 한 번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하는 기적 같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해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끝나자마다 그들이 회개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과 회개에 충분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끝나자 그들은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37절) 그러자 베드로가 다시 설명을 해 줍니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40절에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이한 성령의 역사를 너무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눈물이 나오고, 알 수 없어도 믿음이 생기고, 분간할 수 없지만 확신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덮어 놓고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무모하고 비성경적인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초월하시는 분이지 무시하는 분이 아닙니다. 덮어 놓고 믿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어리석으며, 쉽게 이단에 빠지고 맙니다. 그것은 마치 기초공사를 하지 않고 수십 층의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상누각(砂上樓閣)이란 말이 있듯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영적 교만이며, 영적 사기이며, 영적 기만입니다.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충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앎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심령 속에 말씀이 충분히 뿌리를 내린 다음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행17:11-12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이곳에 교회 부흥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사모함과 전하는 자의 열정입니다. 그들은 진지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그것을 상고했습니다. 상고했다는 표현이 특이합니다. NIV는 이 상고를 examined 로 번역했습니다. 상고하다의 뜻은 마음이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뜻이지만, 연구하고 논증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원어는 ‘아나크리논테스’로 분별하고, 조화를 이루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받으면 ‘아멘!’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맞는 지 맞지 않는 지를 깊이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마음에 확신이 들 때까지입니다.

 

2. 나눔이 풍성해야 합니다.

 

두 번째 부흥의 조건은 소그룹입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저희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교제와 떡을 떼는 일, 그리고 기도하기는 가정에서 드려지는 구역예배를 말합니다. 교회사의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교회 건물은 200년 후에 처음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가정에서 함께 모여 교제하고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즉 소그룹으로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46절에도 보십시오. 아직까지 핍박이 일어나지 않아서 유대인 성전에 들어갔고, 집에서 떡을 떼었습니다.

 

현대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익명성입니다. 서로 간섭받기 싫어하고 개인적이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지독한 고독에 빠져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중적 삶을 살아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인간은 절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함께 소통할 때 삶의 의미와 존재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소통의 장소이자, 은혜의 공간입니다. 그곳에 삶의 맥락(脈絡)을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가 소통되고, 공유됨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 집니다. 그 모임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섬김이 풍성해야 합니다.

 

44-45절을 보시면 초대교회가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 함께 있어 물건을 통용하고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체와 이웃을 섬기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적인 탐욕에 빠지지 않고 기꺼이 이웃을 위해 그것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인들이 너무 욕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자기들만 챙긴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뭔가 다르겠지 생각할 때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나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을 접습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복음 자체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 때문입니다. 문제는 프로그램이나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통해 전해집니다. 사람이 먼저 입니다.


 

  1. 반석교회, 2013년 10월 27일 주일오후설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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