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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3장13절- 4장 3(-6)절 말로 여호와를 괴롭히지 않았는가?

샤마임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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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3장13절- 4장 3(-6)절

말라기  3장 13절- 4장 3(-6) 절 말로 여호와를 괴롭히지 않았는가?

 

여섯 번째 논쟁

마지막 여섯 번째 논쟁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논쟁은 논쟁의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학자들은 말라기 1:1-3:12까지와 마지막 본문인 3:13-4:6이 상당히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단어와 문체가 이전과는 다르게 단호하며 정죄하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부분은 마지막 유언을 하는 느낌이 들고,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권면 같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3:13-18까지로 악인들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대한 분별이 이루어집니다. 후반부인 3:19-4:6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과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이 땅을 칠 것이라는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심각한 경고로 마무리하는 것은 말라기의 시작에서 ‘이것은 경고라’고 했던 말과 쌍을 이룹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여섯 개의 논쟁은 결국 논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와 악을 밝히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권면이자 경고인 셈입니다. 여섯 번째 논쟁은 ‘말’에 대한 논쟁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향하여 완악한 말로 대적한다 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또 반문합니다.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는구나”

“우리가 무슨 말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로 여호와를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백합니다.

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뭔가 다르고 어색한 것들을 기억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보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더 생생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편하고 힘든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에 대하여도 잘해 준 것보다는 못해 준 것을 잘 기억합니다. 기억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기억은 상황 속에서 조작되기도 하며, 자신을 위해 철저히 변형시킵니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쇼핑몰에서 기억을 잃다’는 실험은 사람들의 기억이 얼마나 조작될 수 있는가를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믿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왜곡되어 심각한 상태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유대인들은 말로 여호와를 모욕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정에서 그런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입술을 창조하고 혀를 창조하였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헛되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히려 악인들이 잘되고 교만한 자가 복이 있다. 고 말합니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습니다. 악인들의 형통을 보며 그것을 부러워합니다. 그 부러움 속에는 자신도 악을 행하더라도 성공을 바라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소심함이 담겨 있습니다.


성공주의와 물질만능 주의 사상에 빠진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입에서 자신의 생각들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은 믿어도 소용이 없구나. 정직하게 살아도 도움이 안 되는구나”(14절) 생각합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여호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공을 기대하고 부를 갈망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호와를 모욕하지만 자신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들으신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은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

 

그들의 말들을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마음을 둡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분명하게 그때가 되면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처럼 아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때가 되면 마침내 의인과 악인이 분별되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은 자들이 갈라질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지만 처음에는 잘 분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라지는 밀과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이고 마침내 추수 때에는 그것을 뽑아 불에 던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되면 불같은 시험이 올 것입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불사를 것입니다. 그러나 정금처럼 불에 타지 않은 것들은 오히려 그 불로 인해 정결하게 될 것이며,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지푸라기 같’(4:1)아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시 1:4.5) 뿌리와 가지까지 완전히 태워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악인의 완전한 종말에 대한 선언이십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그들을 치료할 것이며,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놀 것입니다. 지금은 악인들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 같고, 좌지우지하는 것 같지만 그때가 되면 의인들이 악인을 밝을 것이며 악인들은 발바닥의 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오시기 전에 모세에게 명령한 법과 율례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는 것은 실천하는 것이며, 신뢰하며 소망하는 것입니다. 기억함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귀에 담아 둡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약속합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먼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세례 요한에게 적용시키고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라기의 마지막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신약의 복음의 시대, 성령의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말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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