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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3장 7절-12절 너희가 진심으로 복을 받고 싶은 것이냐?

샤마임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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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3장 7절-12절 강해

말라기 3장 7절-12절 너희가 진심으로 복을 받고 싶은 것이냐?

 

내게로 돌아오라

질문은 답을 얻기 전에 질문자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조상 때부터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7절) 반문합니다. 그들의 질문 속에는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대뜸 이렇게 반문합니다.

  •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요 8:33)


그들은 종이 된 적이 없었나요? 아니요. B.C. 586년 이후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 간 후 마카비 시대 잠깐 독립한 것 말고는 계속하여 종으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였고, 그 이후 페르시아의 속국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으로 다시 헬라의 속국이 됩니다. 이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는 건 자가당착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규례를 떠났다고 말씀하심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완악함입니다. 정상적인 자녀라면 부모가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자신을 되돌아보고 혹시 잘못한 것은 없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은 규례를 지키고,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이며, 지혜이며, 존재의 방식입니다. 다양하고 화려한 제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제사는 악한 것입니다. 

  •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머리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배우는 것이 오래가며 정확합니다. 이성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몸으로 직접 해보면 쉽게 이해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책상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책상에서 들었다면 삶 속에서 몸으로 익혀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십일조와 봉헌물’(8절)입니다. 율법을 통해 소산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갖다 바치도록 규정합니다. 봉헌물은 제사의 예물입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이 전적으로 성막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들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레위인이 더 이상 성막에서 봉사할 수 없으며, 생계를 위해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의 부재는 결국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막혔다는 것이며 그것은 그들의 삶이 ‘저주를 받’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구약에서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린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제사장들의 생계를 책임짐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제사장들은 그들을 축복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복은 제사장들에게 위임함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제사장들은 그들의 복을 빌어 줍니다. 이러한 선순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권력이 아닌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여호와께 돌아간다는 말은 좁은 의미에서 다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봉헌물을 드림으로 레위인들이 고통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필요하지 않으며 배가 고프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이 무엇일까요? 십일조의 정신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중의 일부를 먹을 것이 없는 레위인들에게 바치게 함으로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바로 레위인들에게 드림으로 구제의 의미를 갖습니다.

  •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 18:21)


민수기에 나타난 십일조는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땅이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십일조를 통해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성막에 접근하여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는 레위인들은 율법책을 지님으로 각 흩어진 도피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의무를 지닙니다. 레위인들이 제 자리를 지킴으로 하나님이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신 31:9-11)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십일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온전한 마음입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수고한 대로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메뚜기는 식물을 갉아먹습니다. 수고하고 노력한 것들을 수포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수고한 것들이 헛되지 않도록 막아 주십니다. 또한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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