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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643

전도서 연구를 위한 도서 & 논문 목록 전도서 연구를 위한 도서 & 논문 목록 서적 "전도서, 세상적인 삶의 무가치함을 보여주는 책",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24 (말씀보존학회, 2002) 22-27. 소논문 트렘퍼 롱맨 Ⅲ, "전도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목회와신학」 111 (두란노서원, 1998) 160-163. 김의환, " - 전도서 강해", 「월간목회(月刊牧會)」 264 (월간목회사, 1998) -. 박준서, "전도서", 「연세목회자신학세미나강의집」 18 (연세대학교, 1998) 43-48. 최창모, "전도서의 수사적 질문과 헤벨의 상징적 기능에 관한 연구", 「신학사상(TheTheologicalThought)」 104 (한국신학연구소, 1999) 112-145. 헤벨( )은 전도서의 중심 주제를 나타내는 표제어이다. 텍스트 .. BIble Note 2010. 10. 28.
전도서 개론 전도서 개론 일반적으로 솔로몬으로 알려져 있다. 전도서의 내용은 근거로 하여 솔로몬이 지은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정황을 참고하다면 솔로몬의 이름을 빌어 누군가의 수정과 첨가를 통해 재편집 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코할렛이란 단어는 회집을 틋하는 '카할'이라는 어근에서 왔다. 저자는 종교적인 회집을 명할 수 있는 권위있는 교사나 왕일 가능성이 많다. 전12:9에서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쳤다는 표현을 통해 신빙성이 있는 해석으로 받아 들인다. 우리는 전도자를 전도자, 설교자, 강연자, 의장, 회장, 지혜자, 지도자 또는 스승으로 번역할 수 있다. 첫번째 중요한 주제는 해 아래서 전도자는 탐구자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누려본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미친 것과 어리.. BIble Note 2010. 10. 26.
요한복음 12:44-45 나를 보는자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존재로 묘사한다. 주님은 절대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거나 변화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께 종속되어있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무 일도 안한 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일하신다. 사람이란 항상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인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은 철저하게 아버지께 종속되셨다. 아무 것도 스스로하지 않으셨고, 하지 않으신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이제 아.. BIble Note/요한복음 2010. 10. 22.
요한복음 14:26-2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요한복음 14:26-27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은 수전절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주님께 와서 '당신이 그리스도 이면 밝히 말씀하소서'라는 물음에 답변한 것이다. 25절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된 믿지 아니하는도다'고 답변하신다. 주님은 이미 많은 곳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말했고 여전히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믿지 못하고 계속하여 증거를 내 놓으라고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이곳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이 말씀은 분명하게 자신이 성부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확증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헬라.. BIble Note/요한복음 2010. 10. 13.
시편 126편 시편 126편의 배경은 포로에서 귀환하기를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제목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라고 적혀진 것을 보면 충분히 제의적임을 짐작한다. 죄의 값으로 바벨론에 포로된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고토로 돌려 보내 줄 것을 간구하는 내용이다. 울며 씨는 뿌리는 자는 결국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확신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회복하실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중요한 구절은 마지막 두 구절이다. 특히 중요한 단어는 '울며'이다. 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통해 기쁨의 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교회를 상징한다. 세상에 포로된 교회이다. 그렇다면 교회를 위하여 우리는 울고있는가? 진정 우리는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울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 BIble Note/시편Psalms 2010. 10. 12.
수능생 기도회 설교-창세기4장, 가인의 저주와 축복 가인의 저주와 후손 본문 창세기 4:1-17 창세기 1장은 창조, 2장은 여자의 창조, 3장은 타락, 4장은 최초의 살인, 5장은 아담의 후손, 6-10장까지는 노아의 홍수, 11장 바벨탑, 12-50장은 족장이야기....... 창세기는 성경의 토라에 속하는 부분이다. 토라는 교훈, 가르침의 의미이지만 유대인들은 일차적으로 모세 오경을 이야기하고 그에 근거한 나머지의 구약을 모두 토라의 영역 안에 집어넣는다. 아담과 하와의 작은 불순종이 가지는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무서운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살인사건이다. 이 본문 속에는 저는 타락의 의미와 타락으로 인해 인류에게 찾아온 몇가지의 열매들을 찾아 봅니다. 1. 찾아 오시는 하나님 우리는 먼저 본문 속에서 단절된 하나님.. BIble Note 2010. 10. 6.
간음하다 잡힌 여인 간음하다 잡힌 여인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한테 "내 눈에 당신은 돼지 같이 보이오"라고 하자, 그 말을 받은 무학대사는 "소인의 눈에는 전하가 부처님 같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태조는 무학대사의 말에 "정말 내가 부처같이 보이는가?"하며 흐믓해 하자, 무학대사는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는 법입니다"라고 덧붙였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가 돼지 같은지 알게 될 일이었습니다.우리의 눈은 바깥을 보도록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자신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아무리 남을 잘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살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너희가.. BIble Note 2010. 10. 5.
요한복음 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갈증, 목마음, 갈망, 이 모든 것들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요한복음 7:37에 나타난 생수는 초막적 마지막날 드리는 전제에 관한 것이다. 수장절이라고도 부르는 이날은 마지막 8일째 되는 날 큰 날이라고 부르며 마지막장식을 하게 된다. 초막적은 광야 40년 동안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는 것이며, 반석에서 생수가 나온 사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날은 장막절이 지난 후 밀과 보리리 파종해야 하므로 농사에 필요한 이른비를 내려달라는 간구의 시간이기도 하다. 제사장이 실로암 우물에서 물을 길러 오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 뒤를 따라간다. 이때 음악담당 레위인들이 나팔을 불며 다른 제자장들은 이사야 12:3에 나오는 말씀으로 찬송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 BIble Note/요한복음 2010. 10. 5.
창세기 11장 바벨탑에 대한 소고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에 대한 소고 홍수 바벨탑은 노아의 홍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특히 역청이라는 동일한 도구가 그렇다. 성경 속 연대에 따르면 홍수 후 130년이 되던 때 바벨탑은 건설되었다. 벽돌 벽돌은 수직으로 건물을 올릴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스듬한 건축물이 아닐 수 있다. 벽돌에 대해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참고하면 좋다. 언어 바벨은 혼돈의 뜻이 아니라 신의 문이란 뜻이다. Akkadian: bab-ilu, from bab "gate" + ilu "god" Hebrew: bab-el, from bab "gate" + el "god" 바벨탑은 질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혼돈이라 말씀하신다. 이것은 정확하게 반창조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에서 혼돈-카오스-.. BIble Note 2010. 10. 2.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바울은 빌로보교회에 이렇게 권면한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목할 단어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하나님의 본체, 종의 형상, 사람의 모양, 십자가에 죽음 이 단어들은 자기비하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십자자까지의 길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의 절대유기로 이어진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하나님 됨을 비우고 죄.. BIble Note 2010.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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