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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와 침례교의 독서

샤마임 2011. 11. 20.

제가 주로 애용하는 소셜은 페이스북입니다. 이곳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했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많고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페이스북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저도 나이가 마흔은 넘었으니 아저씨에 속하기는 합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제가 주로 소통하는 분들은 대개가 기독교인이고,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특히 목회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목사이니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페이스북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대개가 진보계열의 목회자들이며, 침례교에 속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성향을 살펴 보면 일단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좌파적이며, 혁명적 성향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보수적인 저의 견해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이곳에서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하는 어려운 상관관계를 연결하고 싶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침례교 계통의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이 많으니 그 분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는 고신대학교에서 학부과정을 마쳤고 예장합동교단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정말 보수적인 두 교단에서 공부를 마친 셈이죠. 그러다 보니 저의 성향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색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어 왔던 수천권의 책들의 대부분은 보수적인 사람의 책들입니다. 주요한 인물을 대라면, 조나단 에드워즈, 존 칼빈, 루터, 마틴 로이드존스, 청교도신학자들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아는 지식 또한 보수적 성향을 추구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

그 외 사상들로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먼저 자크엘륄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그 다음으로 폴 리쾨르, 칼 바르트, 본 회퍼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학적인 면에서는 진보적이며 사회주의 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지만 신학이 아닌 실천적 삶에 있어서는 이분들이 훨씬 실제적이고 시대를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분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끄엘륄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서적의 대부분을 구입해 읽었으니 그 분에 대한 영향은  지대하다고 생각됩니다.

온라인 상에서 여러분들은 교제를 하는 중에 제가 느낀 것은 어느 쪽에 속하여 있든지 그곳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정통한 것 처럼 보이지만 상대편에 대한 지식은 편견와 오해로 점철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특히 침례교도들은  장로교를 자신들을 핍박한 '일단의 무리'들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한국의 장로교는 침례교를 핍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장로교가 침례교를 핍박했다고 하는 것은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칼빈에 의한 혁명적 재침례파들에 대한 것이었죠. 한국의 침례교도는 이러한 사상을 이어 받아 그들과 동일한 생각으로 장로교를 안좋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며,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과감하고 밝히고 싶습니다.

또한 많은 침례교인들이 한국의 장로교를 미국의 장로교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정치와 종교의 일치를 추구하는 속세적 권력추구형의 교회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또한 아주 잘못된 생각이며 편견입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정치와 종교를 일치하려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부의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죠. 특히 통합측 장로교단이 정치와 종교를 일치 시키려 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구원은 이 세상에서 육신적 자유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저는 어떤 침례교 목사님으로부터 장로교 기독교인들은 살인을 용인하고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그것은 개인의 신앙의 성향이지 장로교 전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로교가 가지는 신앙의 특성상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장로교는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정치적인 성향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민주주의라는 방법을 통해 교회 정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헤르만바빙크의 영역 주권사상인 화란 장로교의 정치형태가 장로교의 색깔이다 보니 장로교는 정치와 결탁하려는 많은 유혹이 있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그럼에도 장로교는 플라톤적 이분법 신앙사고를 합니다. 즉 성과 속을 구분하려는 성향이 강한 것이죠. 이러한 이중적인 신앙관 때문에 한국의 장로교를 매우 독특한 역사적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그에비해 침례교는 어떤가요? 교회정치적으로 본다면 침례교는 매우 독단적이고 목회자가 왕인 곳이죠. 장로교는 장로제도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침례교는 목회장로가 아닌 치리장로를 둔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어쨋든 침례교는 담임목사가  모든 정권을 휘두르며 교인들은 칼을 빼앗긴 포로처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침례교야 말로 인간적이지 못한 방법을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2년 전에 침례교에 출석하는 어느 여집사님의 고백을 들으니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안하면 교회에 붙어 있지도 못하고, 같은 침례교회끼리도 연합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라고 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가장 성격적인 원리라고 말은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가장 편협적이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은 교회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극단에 서있는 교황과 사제 중심의 카톨릭과 방법은 다르지만 완전히 닮아 있는 것이죠. 저는 단순히 침례교를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말한 것처럼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아무런 의미가 없고 다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장로교나 침례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허물많고 죄많은 죄인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세워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독서입니다. 장로교인들이 읽는 도서목록과 침례교가 읽는 도서 목록을 충분히 나눈다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례교는 루터와 존 칼빈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을 확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럼에도 장로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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