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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고대철학과 요한복음

샤마임 201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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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고대철학과 요한복음

철학사를 굳이 구분한다면 고대철학과 중세철학, 근현대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고대철학이 순수철학이며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철학을 말한다면, 중세는 기독교화된 유럽철학을 말한다. 근현대 철학은 신하의 하녀로서 자리를 박차고 오직 합리성 이성을 최고의 철학의 사유근거로 삼은 시기이다. 물론 칸트에 의해 무참히 짓이겨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철학은 인간 이성의 자율이라는 근거를 버릴 수 없다. 중세와 근현대 철학은 후에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고대철학의 한 분파였던 멜레토스학파를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과 후대에 생겨난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를 간단하게 살펴 보려한다.

고대철학은 크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과 이후의 철학으로 구분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은 현대의 철학자들이 구분하는 자연철학에 속하는 것이며, 소크라테스는 인간 철학으로 불리는 것이다. 아티카의 철학으로 불리기도 하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중심인물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리스철학의 발생지는 소아시아 서부연안에 자리한 이오니아지방이다. 이오니아 반도에 속했던 도시들은 멜레토스, 에페소스, 클라조메나이, 콜로폰, 사모스 등이다. 이전철학자들은 대부분이 이들 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이전철학을 '이오니아 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그들이 현대의 자연과학에 속하는 사유를 진행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요하네스가 주장한 것처럼 그들은 자연철학이라고 하기보다 형이상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근원과 원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존재전체의 원리를 말하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1. 멜레토스 학파

탈레스(Thales 기원전 624-546)

고대 사람들은 탈레스를 일곱 현인 중의 한 명으로 꼽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초기 철학자들은 물질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최초의 근원(원리, 아르카이, principia)을 찾아 헤맸다. 참된 근원에서 사람들이 생겨나서 다시 그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근원들을 원소라고 불렀다. 모든 개체적인 것들은 이 참된 실체에 있어서 한 가지의 사건(상태, 파소서)에 지나지 않았다. 원진(원리, 아르케)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관해서는 철학자들마다 다른 의견을 내 놓았다. 탈레스는 근원(원리, 아르카이)을 '물'이라고 보았다. 탈레스는 만물이 물이며, 만물이 신들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5)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밀레토스에 살았다. 그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유럽 최초의 철학책을 펴냈다. 존재의 원리를 규명함에 있어서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와 다른 이견을 제시했다. 그는 아르케는 '아페이론'이다. 아페이론은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것, 또는 무한하게 규정되지 않는 은 것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아페이론은 논리적으로 더 자세하게 규명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시간적이며 공간적인 끝이 없는 것이다. 즉 영원한 것이며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정의는 탈레스보다 좀 더 보편적 존재원리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문제는 아페이론이 더 이상 규명불가능하다는 정의로 더 이상의 사유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고대의 해석가들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을 모든 생성들이 그 소재를 받아내고 있는 무한하고 무진장한 저장고라고 파악함과 동시에, 신적인 것이요, 죽지 않는 것이며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s. 기원전 585-528)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이다. 그는 공기를 원리(아르케)라고 보았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퇴보이다. 만약 아르케가 공기라면 무소부재하지 않으며, 공기가 희박한 곳은 아르케의 희박을 뜻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공기가 느슨해지면 불이 되고, 짙어지면 바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구름이 되고, 더욱 더 짙어지면 물이 되고, 그 다음에는 흙이 되고, 또 그 다음에는 돌이 된다. 그러나 기타의 모든 것들은 모두 이 돌에서 생겨나다."

2. 헤라클레이토스와 엘레아학파 생성과 존재

이전철학자들의 한결같은 질문은 존재자에 대한 것이었다. 즉 모든 것이 성립되게 하는 근본 질료는 무엇이며 사물들을 현재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시작과 끝은 고찰되었지만 그 과도기인 중간단계는 아무런 언급도 되지 않았다. 이제 엘레아학파에 의해 생성에 관한 질문이 시작된다.

헤라클레이토스(Ή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4)

고대인들은 헬라클레이토스를 어두운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의 사람됨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요한네스는 "지금 전해지고 있는 그의 단편들과 격언들은 희귀한 보석처럼 딱딱하고 어두운 불빛으로 가득차 있다."고 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헬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르고 있으며, 아무 것도 한결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명제를 남겼다. '우리는 동일한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물도 이미 다른 물이지만 우리들 존재도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영원히 흐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세계의 참된 본질이다. 즉 '원리란 생성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 안에서 헤겔의 변증학적 사고를 발견한다. '이 세계는 신이 만든 것도 아니며,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정도에 따라 불타기도하고 꺼지기도 하는데, 이 불은 영원히 살아있는 불이다. 이 불은 '세계이성'의 상징이며, 형상이다. 생상은 항상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끼어 있다. 이 대립되는 것들이 운동을 흘러가게 한다. 서로 대립하며 모순을 가지며 흘러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것들은 서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든다. 즉 서로 가까워졌다가 서로 멀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순과 대립을 통해 생성이 이루어지고, 대립자체가 생명이 된다고 보았다. 그는 결국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라고 까지 주장하게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생성과 모든 것들이 흘러가는 속에서 질서와 조화, 의미와 통일을 보고 있다. 그는 이것을 로고스라고 주장한다. 즉 대통합이 로고스다. 그는 로고스는 다른 것들의 공통적인 것이요, 영원한 생성 속에서 불이 붙었다가 꺼졌다가 하는 정도요, 신의 법칙이고 한다. 이 신의 법칙은 모든 것을 다스리며 '인간의 모든 법률'도 로고스에서 영양을 공급 받게 된다. 결국 인간의 모든 법의 권력은 신의 법칙에서 나와야 한다. 그는 로고스를 신이라고 한다. 로고스는 모든 것의 동인(動因)의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요한복음의 로고스

요한복음에서의 로고스는 성육신한 예수를 말한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고, 그 로고스가 곧 하나님이며,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주제이다. 요한은 로고스를 신적인 존재이며, 그가 곧 신이며, 그가 곧 육신으로 온 예수임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요] 1:1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로고스)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로고스)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고스)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4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헬라클레이토스에게 로고스는 생성을 조종하는 세계의 법칙이다. 세계이성이란 것도 이 로고스이다. 그러나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정신은 아니며, 내재적인 생성의 법칙으로서 로고스를 주장한다.

요한의 로고스의 언급은 예수를 헬라철학에 복음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도올 김용옥은 EBS 강좌를 통해 사도요한의 로고스와 헬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를 연결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그의 '요한복음 강해'에서 이 문제를 좀 더 깊게 다루고자 했다.(기사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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