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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얻는 지식

샤마임 2011. 6. 26.


앙드레지드의 [전원 교향곡]에 나오는 이야기

눈먼 소녀를 목사가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해준다. 온갖 언어를 사용하여 최대한 근접하게 설명한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언어로 설명을 해준다. 소녀는 목사님이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다 어떤 의사의 도움으로 시력회복 수술을 받게 된다. 시력을 회복한 소녀는 알프스로 돌아가 목사님이 설명해준 멋진 풍경을 보고 싶어했다. 그녀는 한 달음에 알프스로 향했다. 그러나 왠일인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알프스의 풍경은 목사님이 설명해준 세계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직접 눈으로 바라본 알프스의 풍경은 목사님의 설명을 훨씬 뛰어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천국도 이와 같다.  인간의 언어로 아무리 천국을 설명한다 한들 그것은 극히 미미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왜곡의 가능성도 많으며, 보는 자마다 다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올바로 전달할 수도 없다.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올바로 볼 수도 전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고전13:11-2에서 바울은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표현한다. 어린아이는 성인이 가지는 눈이 없다. 즉 경험이 없는 것이다. 경험이 없다는 것은 편견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이며, 올바론 판단을 내릴 만한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볼 때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그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하고 변형시키며 왜곡시킨다. 주관적인 해석의 틀을 저마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장자는 우물안의 개구리와 바다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안의 경험과 비교의 대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그것으로 판단한다. 자. 그 개구리가 다른 우물로 갔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이전의 우물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과 비교한다. 그럼 다른 해석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가진 한계들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에 종속되고, 높이와 길이에 종속되고, 넓이에 종속되어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뛰어넘고 초월하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참으로 올바른 해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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