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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제2의 천성?

샤마임 201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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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링텅은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천성을 10배이상 높여 준다고 했다. 어떤 습관을 갖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습관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이다. 그가 어떻게 제2의 천성을 설명해 나가는지를 살펴보자.


점진적인 원죄로서의 불안- 죄성과 더불어 성욕이 정립되었다. 바로 그 순간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인류에 있어서의 죄성이 양적인 규정 안에서 움직이듯이, 불안도 역시 그렇다. 원죄의 결과 혹은 원죄의 현존재가 곧 불안이고, 이것은 아담의 불안과는 오로지 양적으로 다를 뿐이다. ‧‧‧‧‧‧‧ 후대의 개체에 있어서의 불안이, 인류가 역사에 참여함으로써, 한층 반성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불안이 이제 다른 의미에 있어서 세상에 온 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역사는 습관에다 비유할 수 있다. ‧‧‧‧‧‧‧ 습관은 실로 제2의 천성이지만, 그것은 결코 새로운 질(質)이 아니라 양적인 진전에 불과한 것이다. 죄는 불안으로 말미암아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죄가 불안을 가져온다. 죄의 현실성은 영속성을 지니지 못한 현실성이다. 한편 죄의 연속성은 불안을 자아내게 하는 기능성이고, 반면에 구원의 가능성은 개체가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또 하나의 무(無)이다. ‧‧‧‧‧‧‧ 구원이 현실적으로 정립되는 바로 그 순간에야 비로소 이 불안(不安)은 극복되는 것이다.'

키르케고로, [불안의 개념] 중에서

 

 위의 글은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에서 점진적인 원죄로서의 불안의 일부분이다. 키르케고르는 습관을 제2의 천성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습관은 단지 천성의 확장된 개념, 양적으로 많아진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의 모든 근원의 근원인 원죄로부터 확장된 것이 바로 사회 현상 속에 일어나는 인류의 죄이며, 이것은 습관이라는 것을 통해 일어난다. 사람은 천성을 거역할 수 없으며, 운명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본질이다. 즉 천성을 바꾸지 않으면, 습관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은 좋은 천성에서 나온다.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원수를 죽이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이기기 위해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된다. 책을 읽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친절하게 보여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결국 그것을 통해 원수를 같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좋은 습관은 진정 좋은 습관일까? 이러한 예는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예를 찾을 수 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한 장면


사자성어인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오나라 부차와 월나라 구천과의 전쟁 속에서 일어나 역사를 표현한 것이다. 서로는 원수를 갚기 위해 왕이면서도 궁이나 화려한 곳에서 살지 않고 짚 위에서 자고 장작더미 위에서 자면서 철저하게 복수의 칼을 갈았다. 
 

좋은 습관이란 결국 자신의 천성을 확장시킨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을 본성을 바꾸는 것이다. 성령의 중생케시는 능력이야 말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의 전확점인 것 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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