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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경의 그림 언어와 상징 해석

꿈꾸는몽당연필 2021. 12. 6.

성경의 그림 언어와 상징 해석

앤서니 티슬턴 / 최승락 옮김 / 이레서원

 

 

[갓피플몰] 성경의 그림 언어와 상징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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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앤서니 티슬턴이다. 이 책은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든 티슬턴만의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두 지평>을 통해 이미 성경해석의 틀을 제공한 저자는 이번에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틀을 제공한다. 물론 <두 지평>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티슬턴은 <두 지평>을 통해서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거기의 상황을 설명하려 애썼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결코 2천 년 아니 3,500년 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없다.

 

가끔 시골 빈집을 볼 때가 있다. 시골집들은 담이 없어 나와 너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상당하다. 특히 타인의 땅에 집을 올려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것뿐이 아니다. 화장실은 밖에 있고, 지금보다 훨씬 기온이 낮았던 당시에도 보온이란 고작 한지로 바른 창호(窓戶)가 전부다. 불과 30년도 되지 않은 한국의 모습이다. 하물며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2천에서 4천 년 전의 이스라엘 상황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고대 문헌으로만 성경을 두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원제는 “The Power of Pictures in Christian Thought”로 번역 제목보다 확실히 능동적이다. 저자가 말하는 그림의 힘이라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일까? 한글 제목과 부제는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성경에 담긴 ‘그림 언어’와 ‘상징’을 바르게 해석할 때 가져올 해석상의 능동성이 가능해진다. 1장에서 4장까지의 제1부에서는 철학을 비롯한 해석학과 문학에서 그림을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저자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이점은 저자가 30년 전에 저술한 <두 지평>의 틀을 어느 정도 차용하고 있다. 은유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니체와 데리다를 통해 ‘은유를 조장과 망상의 도구’(92쪽)로 볼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환기시킨다. 하지만 리쾨르 등을 통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도 말했지만 어쩌면 제1부는 성경의 그림 언어와 상징 등을 이미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에게는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물론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4장의 서두를 읽어보면 저자는 확실히 재닛 소스키스의 주장을 따르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성경은 역사와 문화의 옷을 입고 기록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이란 시공성을 부정하면 성경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 남는 것이 아니라 텅 비고 말 것이다. 저자는 소스키스의 말을 빌려와 ‘그것들이 뿌리를 박고 있는 체계, 전통, 공동체,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관습의 세계 속’(105쪽)에 두고 읽을 때 중대한 차이가 일어남을 지적한다. 우리는 성경의 그림과 상징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기록 당시의 ‘체계와 전통’(115쪽)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신약에 ‘예루살렘’과 ‘공동체’는 기존의 성전 중심의 혈육 적 공동체를 벗어나 새로운 것이었다. 특히 사도행전 안에서 바울과 동료들이 회당에서 나오면서 신발의 먼지를 터는 행위는 새로운 공동체의 불가피함을 혁명적으로 그러 내고 있다.


5장부터 9장까지의 제2부에서는 성경의 사용된 그림과 상징, 이미지 등을 풀어 나간다. 5장은 구약을 다루고, 6장부터 9장까지는 신약을 다룬다. 구약은 상징적 문화로 가득 차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의 절반을 가르는 행위나 야곱이 요셉에게 허벅지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행위는 대단히 상징적 행동이다. 룻기에 등장하는 신발을 벗는 행위도 자신의 의무를 벗는 상징적 행위다. 


제3부에서는 역사적으로 살핀다. 3부가 가장 서두에 나올 법한데 맨 뒤로 밀었다. 초대교회 문헌과 교부들의 문헌을 살피면 과도하게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얼마 후에 역사와 과도한 알레고리를 거절하고 성경을 문법과 역사적 방법으로 해석한 안디옥 학파가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알레고리 적 해석법을 차용하지만 터툴리안처럼 로마법의 사고를 하는 이들은 이성과 문법을 중요시한다. 터툴리안은 영지주의자인 발렌티누스파를 향해 ‘가장 헛되고 추악한 것들을 만들어 냈다’(362쪽) 일갈(一喝)한다.

 

중세와 근현대의 교회사를 톺아 오며 저자는 아직도 그림과 상징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거부의 양 극단이 있음을 지적한다. 누군가는 성경을 과도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누군가는 새를 사탄이라 주장하는 기이한 알레고리를 주장한다. 분명 그림과 유비 등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407쪽) 말하지만 여전히 미혹의 힘 역시 적지 않다고 주의를 준다. 올바른 성경 해석위한 꼼꼼한 조언이 마음에 든다. 성경을 깊이 읽고자 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필독서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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