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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골목산책] 목포 근대 문화의 산역사 번화로

샤마임 2020. 6. 16.

[목포골목산책] 목포 근대 문화의 산역사 번화로

1987년 목포가 개항했다. 부산이 개항한지 만 10년 후다. 목포가 개항을 준비하자 부산에서 관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목포개항은 전라도의 문화의 핵심지로 자리매김한다. 번화로는 목포 개항의 산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건물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말이다. 1970-80년대 목포를 알고 싶다면 번화로를 찾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목포 테디베어 & 퀼트

아내는 한 때 퀼트를 했다. 촘촘한 천에 가늘고 짧은 바늘로 천을 꿰매는 고된 노동을 거쳐야 퀼트는 완성된다. 퀼트를 통해 만들어진 가방이나 소품은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잘 뜯기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아내는 간판을 보고 기웃거리더니 곧장 가게로 들어간다.

퀼트에 무지한 나로서는 관심이 없고, 오목조목 귀엽게 만들어진 고양이 조각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 조각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여기저기 고양이 조각이다. 주인이 고양이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목포 테디베어 & 퀼트

갑자옥 모자점

누군가는 관심도 두지 않고 지나칠 간판이다. 하지만 갑자옥 모자점은 목포 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게이다. 갑자옥 모자점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어 현지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통 모자점이다. 사실, 모자만을 다루는 가게는 처음이다. 이 주변 거리는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과 목포 5.18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인 구 동아약국,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붉은 벽돌 창고, 화신백화점 목포지점 등이 있는 곳이다. 

갑자옥 모자점은 제주도 출신의 문공언이 일본 상권 중심에 문을 열었다. 목포가 개항된 후 목포는 제주도와 뱃길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 된다. 특히 일본인들이 제주도를 거쳐 내륙으로 들어갈 때 대부분 목포를 경유했다. 문공언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낭화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구상했다. 결국 목소 시내에 모자점을 열기로 결심한다. 

지금이야 잘 하지 않지만 조선은 모자의 나라다. 모자는 품위였고, 문화였고, 품격의 상징이었다. 갑자옥 모자점은 조선인이면서 일본 상권 중심 거리에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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