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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말라기

[말라기 묵상] 1. 1:1-5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by 하늘땅소망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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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말라기


[말라기 묵상] 1. 1:1-5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라기처럼 파격적으로 시작하는 성경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말라기는 경고입니다. 경고는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떤 성경도 '경고'라고 경고한 성경은 없습니다. 말라기를 읽을 때는 격앙된 감정의 선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신 이유는 나쁜 결과를 막기 위함입니다. 위험한 곳에 경고판을 부착합니다. 그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고판을 볼 때 ‘위험’을 감지하고 더 이상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것은 용납할 수 있는 경계의 끝자락에 있다는 말입니다. 조금만 더 간다면 결국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경고는 좋은 것이면서 동시에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고함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싶어하십니다. 

  

감기가 들면 몸은 경고를 보냅니다. 피곤을 느끼고 병이 들었다면 몸이 보내는 경고입니다. 더 이상 무리하면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신호인 셈입니다. 이것은 이제 쉬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경고는 누군가에게 경고이고, 누군가에게 신호입니다. 경고를 잘 읽는다면 삶을 바르게 경영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고를 무시합니다.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선택할 일이지만 반드시 자신의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경고하실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대화하십니다.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저희를 사랑한다고요? 도대체 언제 사랑하셨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자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대화 속에 깊은 갈등의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사랑(아하브, 언약적 사랑)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억울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랑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도 황당합니다.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데 느닷없이 사랑했다 하니 말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사랑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는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적 거부가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사랑받은 적이 없다는 말에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의 추억을 회상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합니다. 사랑(아하브)과 미움(사네)은 감정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대할 때 특별히 원수 대하듯 대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바로 앞에 두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신 23:3)하게 하시고 그 이유를 그들이 발락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후손인 에돔에 해서는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신 23:7)고 타이릅니다. 창세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에서는 특별히 어떻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움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랄프 스미드는 이것은 사랑과 미움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유기’의 문제로 봅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선택하지 않고 야곱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적정이며, 영원하신 뜻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여전히 장자권을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모든 것을 홀로 독단적으로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삭을 떠났고, 홀로 붉은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에돔을 적들에게 내어주어 네게브 광야로 쫓겨납니다. 다시 회복하려 했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이두매인들이 되어 광야를 헤매게 됩니다.

  

에돔은 유다의 멸망 앞에서 웃었고, 손뼉을 쳤고, 즐거워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유다가 멸망할 때 느부갓네살 왕을 도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이 일로 말미암아 에돔과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스타인스프링이란 학자는 포로 후기의 유다 신학을 연구한 후 ‘에돔 저주의 신학’이란 주제를 끌어냈습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옵 1:10-11)

  

유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나바트인들이 에돔을 페트라 지역에서 완전히 추방시켜 네게브로 몰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4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머무는 신이 아님이 분명해졌습니다. 애굽의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느부갓네살이 점괘를 예루살렘으로 나오게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5절)

  

사랑 논쟁에서 남은 것은 ‘하나님의 크심’입니다. 이것은 크신 하나님이 모든 열방과 민족들보다 이스라엘을 사랑했는데도, 

그 사랑을 ‘작다’, ‘아니다’

말하는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너희가 과연 다른 나라보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냐?

그럼에도 너희를 그토록 사랑하였는데 ‘아니다’라고 말하는 너희의 저의가 무엇이냐?

  

첫 번째 논쟁의 결론입니다. 

  

저는 이렇게 답을 내려 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사랑 감사하고, 지금도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고 있다고. 아직 포로이고, 아직 가난하고, 아직 힘들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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