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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말라기

[말라기 묵상] 말라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by 하늘땅소망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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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묵상] 말라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입니다. 연대기적으로 마지막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라기를 구약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말라기의 저자인 말라기가 누구인지 적지 않은 신학적 논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먼저, 말라기는 포로 귀환 이후의 선지자입니다. 포로 귀환 초기인지 후반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말라기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면 아마도 후반기에 속하는 B.C. 433년경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이 시기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있었던 B.C. 435-515에 해당됩니다. 말라기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로기의 문헌인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를 먼저 공부하면 좋습니다. 특히 포로에서 귀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포로 귀환 이후의 이스라엘 상황을 세밀하게 그려줍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란 뜻을 가진 말라기가 예언을 합니다. 말라기의 주제는 명확합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유다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은 삶을 돌이키는데 실패했고, 새로운 시대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라기서는 왜 실패를 굳이 언급해야 할까요?


말라기는 주의 사자라는 뜻이지만 성경 안에서는 천사를 말합니다. 유대 전승을 모은 <선지자들의 생애>에서 말라기는 포로 시대 이후 소파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흠도 없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 경건하며 온유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사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전승은 그리 믿을 것이 못되어 아이슬렌은 가치 없는 것이라 일갈합니다. 우리는 말라기라는 이름이 본명인지 별명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말라기에 대한 인물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드넓은 성경의 바다에 홀로 떨어진 무인도처럼 고독해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과 예언의 내용들은 포로 이후의 선지자들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잘 알고 지냈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말라기의 시대와 배경을 알뿐 다른 어떤 것도 알아내기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로 귀한 이후의 배경 속에서 말라기를 읽어야 하고, 하나님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바로 서지 못하는 유다의 허물을 발견합니다. 말라기에는 유다인들의 실패와 하나님의 약속이란 두 기둥이 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말라기는 그들의 오해는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의 징계를 오해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신들의 마음과 제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라고 촉구합니다. 거룩한 행실도 없고, 제사에도 흠 있는 제물을 드림으로 제사에 대한 무성의함과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가득합니다. 특히 십일조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아오라 합니다. 그들을 복주 시기를 원하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저주를 선언하시며 심판을 예고합니다. 성경의 바다에 고독한 섬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말씀은 있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을 지칭하는 엘리야의 예언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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