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별설교] 디도서1장 교회에 장로와 감독을 세우라

샤마임 2020. 5. 14.
반응형

장별설교-디도서


[장별설교] 디도서1장 교회에 장로와 감독을 세우라

디도서는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AD. 63-65년 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내용은 디모데전서와 매우 흡사하며, 디도를 대하는 바울의 태도 역시 디모데를 대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쌍둥이 서신처럼 보입니다. 1:5에의하면 디도는 현재 ‘그레데’ 즉 그리스 지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레데는 현재 크레테로 불리는 섬입니다. 지도를 보면 현재 이탈리아와 이스라엘을 직선으로 그으면 정 중앙에 그레데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죄수로 잡혀 있다 로마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때 잠깐 머문 곳이 그레데 항구였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를 각 성에 장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1:5) 디도서는 디모데전서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안에서 합당한 직분자를 세우고, 모범을 보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디도서 1장은 

1-4절 인사말

5-9절 장로의 자격

10-16절 그레데교회의 상황


2. 장로의 자격(5-9절)


디도가 그레데에 남아서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남은 일을 정리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일입니다.(5절)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목회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먼저 교회는 지도자가 필요하며,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고 그들 앞에서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하여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하지 않았습니다. 직분자를 세워 일을 위임하고, 그들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5절의 장로와 7절의 감독은 정확하게 구분하기 힘들지만 문맥상 약간 다르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렇다고 5절의 장로가 현대교회의 치리장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7절의 감독은 기존의 장로와는 약간 다른 의미의 목회자를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6절에서 장로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방을 받지 않으며,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자녀는 둔 자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외인들로 하여금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자격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일정한 보호장치를 가진 이가 장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로는 타인들에게 불필요하게 입에 오르락내리락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치리하는 일에 있어서 규묘와 질서를 가진 자야 합니다.


7절에서 소개되는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부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창고를 맡은 자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감독은 장로보다 현대의 목사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둘째 고집에 세면 안 됩니다. 셋째, 급하게 분을 내서는 안 됩니다. 분을 낸다는 말은 쉽게 타인을 정죄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급한 성격을 말합니다. 네번째 자격을 술을 즐기지 않는 자입니다. 술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동물적인 본성을 따라 살아가게 합니다. 즉 이 말은 인간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않는 자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반대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8-9절에서 소개합니다. 먼저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해야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착해야 합니다. 어떤 교역자들은 선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 딱히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선한 삶이 없는 형식과 가식에 치우진 이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중하고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는 자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표현이지만 네 가지 표현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목회자는 성도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억압하거나 덕스럽지 못한 말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9절에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자라고 말합니다. 미쁜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의미하며, 변함없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먼저는 바른 교훈으로 교인들을 권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모범이 되지 않는다면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목회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연약한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성도에 비해 영적인 부분에서 탁월해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성도를 권면하는 일에 능해야 하고, 성도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긍휼과 사랑이 가득해야하고, 신중하게 성도들의 영혼을 다루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볼 때 신뢰하고 자신의 영혼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를 보면서 예수님을 발견해야하고, 나도 저분처럼 믿음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한 성도들을 책망할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은 한 마디로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