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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골방의 기도 마태복음 6:6

by 하늘땅소망 2020. 4. 11.

골방의 기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를 ‘대화’라고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만만치 않는 일입니다. 사람처럼 말하면 대답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기도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를 평가절하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누군가 ‘기도하겠습니다’를 예의상 하는 말로 받습니다. 또한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진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딱히 할 말도 없고 위로를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기도하고 애써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노동 중의 가장 가치 있는 노동이자, 가장 힘든 노동입니다.

오늘 주님은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이 조언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성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서서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뜰에서 서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눅 18:11) 그리고 소리를 내서 기도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들었고, 기도하는 사람도 듣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기도는 공적인 것이었고, 공개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많이 큰 소리로 기도할 때 경건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칭찬은 ‘사람에게 보이려고’(5절) 기도하는 잘못된 습관이 만들어 질 수 도 있습니다. 더욱 경건히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그를 칭찬했고, ‘참으로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이다’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향해 ‘이미 상을 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듣지 않는 기도’이며, ‘하나님께 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쇼’를 했던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으면서 경건한 척하고, 기도하지 않은 면서 기도한 척했습니다.

‘척’의 신앙이 얼마나 무섭고 중독되기 쉬운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영혼은 메마르고 해골로 가득 차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은혜를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척’을 합니다. 가식과 외식이 그의 옷이 되어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심각한 영적 외식에 빠지고 맙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는 경건의 옷을 벗고 탐욕의 편한 곳으로 갈아입습니다. 온유의 옷을 벗고 포악의 갑옷을 입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경건하다고 믿고 의심치 않고, 자신처럼 온유한 자가 세상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은 ‘네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외식하는 자들에게 골방이 필요할까요? 있기나 할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기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골방이라뇨? 주님은 나아가 ‘문을 닫’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은 다른 사람의 시각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나님의 품 속으로 은익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골방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둘 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간섭과 시각을 원하지 않습니다.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서로 너무 좋기 때문에 둘 만이 공간에 있고 싶어 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직 주님과의 밀폐된 공간을 즐깁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은밀한 아픔과 고통을 아버지께 털어 놓고 싶어 합니다. 아직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토로합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둘 만의 비밀이 쌓여갑니다. 주님과 친밀한 사이가 되면 주님과 기도자만 아는 비밀이 쌓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고백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됩니다.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은밀한 마음’입니다.

골방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어느 누구도 듣지 않아도 하나님 아버지는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답이 그곳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 다리를 걸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전부를 드립니다. 그 어떤 이방의 신도 부르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부릅니다. 세상의 어떤 방법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찾습니다. 

골방의 기도자는 가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그대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 이 죄인이 주님께 왔습니다. 깨지고 상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왔습니다. 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이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무엇으로 저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아니시면 누가 저의 아픔을 아시겠습니까? 주님 다만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상하고 아픈 마음을 가지고 왔사오니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합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말합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합니다. 화려한 수사어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짧든 길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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