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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고난주간묵상] 마태복음 22:1-14 청함은 받았으나

by 하늘땅소망 202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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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수)

마 22:1-14

청함은 받았으나

[본문 읽기]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말씀 묵상]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는 왕

혼인잔치 비유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그 질문이 무엇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나 아마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다시 설명하십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가 나와 권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21:23) 주님은 대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례요한의 권위가 사람에게서인지 하늘로부터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주님은 역시 대답하지 않으시고 포도원에 일하러 가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21:28-32) 이야기의 핵심은 ‘예’라고 대답하는 큰 형과 같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아니오’라고 거절했지만 순종한 둘째 아들과 같은 세리와 창기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누구에게 오는가. 말이 아닌 순종을 통해 옵니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에게 천국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혼인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을 초대한 왕의 이야기도 ‘천국’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먼저 천국은 잔치입니다. 왕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이러한 잔치 비유는 후에 요한계시록에서 발견됩니다. 천국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환상과 닮아 있습니다.(계 19:9) 왕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많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준비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오기만 하면 됩니다. 종들은 보내어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이곳에서 중요한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합니다. 천국은 초대된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인정받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 우연히 교회를 가게 되고, 누군가의 간청으로 교회를 오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을 통해 전해진 초대장입니다. 초대는 특권이고 사랑입니다.

한결같이 거절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절합니다. 왕이 초대하는데 거절합니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을 위해 떠났습니다. 남은 자들은 왕의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임금은 소식을 듣고 노하여 군대를 보내 그들을 죽이고 동네를 불사릅니다. 그리고 청한 사람들이 합당하지 않으므로 길에 나가 아무나 데려오라 합니다. 악한 자도 있고, 선한 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적절해 보이지 않지만 이 야기를 듣고 있는 ‘바리새인’(15절)은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합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임금은 하나님이며,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비유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군대를 보내 멸할 것입니다. 이 비유를 마치고 약 37년 정도가 흐른 70년경에 로마의 디토 장군이 반란을 일으킨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학살해 버립니다. 이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든지 요세푸스는 당시 유대인 역사가는 피가 무릎까지 찼다고 기술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은 쫓겨나고

이제 혼인잔치에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임금들이 손님들을 보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합니다. 왜 예복을 입지 않았냐고 묻지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손발이 묶여 바깥 어두운 곳으로 던져집니다. 예복은 임금이 혼인잔치에 참석한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것입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예복만 입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입기 싫어 입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복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설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라는 예복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조건은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는가 묻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존재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공로나 행위로,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오직 보혈의 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마무리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를 얼마나 알까요? 저의 신앙을 되돌아보니 처음 믿을 때 만큼 주님을 사랑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 지식을 증가하고 종교생활을 익숙해졌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는 퇴보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스라엘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고난주간을 보내며 다시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결단과 기도

* 하나님 우리의 마음의 눈을 떠서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감사하게 하소서.

* 오직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여 집니다. 나의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십자가만을 붙드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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