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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고난주간묵상] 마태복음 21:18-22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by 하늘땅소망 2020. 4. 6.


4월 7일(화)

마 21:18-22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본문 읽기]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말씀 묵상]


시장하신 예수님


아침이 밝았습니다.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마지막 남겨진 시간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아까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어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다음 베다니로 돌아가셨습니다.(17절) 아마 나사로의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날이 밝자 이름 아침 다시 성으로 향하십니다. 베다니를 지나 벳바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벳바게를 무화과나무의 마을이란 뜻입니다. 시장하신 주님은 무화과 나무를 보았고, 혹여나 무화과가 있을까 찾았습니다. 


주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을 수도 없이 읽고 묵상했지만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 단 한 번도 주님께서 시장하시다는 표현에는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읽다 시장하신 주님을 발견합니다. 나사로의 집이 가난해서 아침을 드리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폐를 끼치기 싫어 일찍 나와 아침을 드시지 못한 걸까요? 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이든 주님은 시장하셨고, 뭔가를 드셔야 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문득 고난주간 주님의 행보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고달픔과 고독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언제나 피곤했습니다.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 먹을 것도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길을 잃은 무리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긍휼이란 헬라어 단어는 ‘창자가 뒤틀리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즉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마음의 아픔을 느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시고, 기적이 많으신 능력자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아닌 곳에서는 단 한 번도 기적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배고프셨고,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서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주님의 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철저히 혼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배가 고픕니다. 그러나 열매는 보이지 않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가나안의 무화과는 두 번 열립니다. 3월쯤에 처음 열매가 열리는데 그것을 ‘파게’(벳바게의 바게는 히브리어 ‘파게’이다.)입니다. 파게는 작고 보잘 것 없이 농장 주인은 종들을 시켜 그것을 따서 버리게 합니다. 그래야 5-6월에 열리는 무화과가 크고 달기 때문입니다. 파게는 지나는 아무 사람이나 먹도록 내버려 둡니다. 주님은 파게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갔지만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의 식물 무화과]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주인은 열매를 기대하며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또한 잘 자라기 위해 충분한 영양을 제공하기 위해 비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음에도 무화과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기대를 저버린 무화과나무가 존재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이란 믿음의 조상이 있고, 모세를 통해 어느 나라와 민족도 받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분주하고 다양한 종교적 행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육신적 할례를 있었지만 마음의 할례는 없었고, 흠 없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좋은 제물을 파는 상인들이 성전에 우글거렸지만 그들의 마음은 온갖 탐욕과 악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잎은 무성했고,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무화과나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배고픔을 채워줄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술을 빌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렘 8: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가나안 7대 소산물로 귀하게 여김을 받은 나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었던 영광을 다시 빼앗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이들이 받을 운명입니다.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곧 말았단 말인가?


마른 무화과나무의 비유의 핵심은 ‘믿음’의 문제인 것을 강조하십니다.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 주님께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습니까?”


주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주님은 분명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하셨는데,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에 관심을 보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성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기도의 집’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온갖 화려한 제사가 있고, 제사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강구되지만 진작 주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사야의 조언을 듣고도 하나님께 증표를 구하지 않은 아하스 왕의 불신과 같습니다.(사 7:12) 하나님을 믿는 척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자 신뢰입니다. 


마무리


본질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개념이나 철학, 형이상학도 아닙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우리의 약함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가입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진정 주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아니면 포장만 종교적이지 않는지 살펴봅시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연약한 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많은 성경 지식이나 신학적 사변이 아니라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주님의 사람입니다.



결단과 기도

* 주님! 마음의 분주함으로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 주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시고, 주님을 신뢰하는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심을 믿고 간절히 주님을 찾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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