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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크리스찬북뉴스

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로마서 / 벤 C. 블랙웰,존 K. 굿리치,제이슨 매스턴 / 이학영 옮김 / 감은사

by 하늘땅소망 2020.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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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로마서

C. 블랙웰,K. 굿리치,제이슨 매스턴 / 이학영 옮김 / 감은사

 

 

 

[감은사]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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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바울에 관한 새관점이란 주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거나 관련된 책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2성전기라는 용어가 주는 긴장감을 이해할 것이다. ‘중간기 문헌이 아닌 2성전기 문헌’은 학문적 표현에 가까우며, 신학적 관점에서 바울신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N.T. 라이트와 제임스 던, 그리고 E.P 샌더스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이란 폭풍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다.

성경을 신성시해 왔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나 보수적 관점에서 바울 신학을 설명하는 이들에게 2성전기 문헌은 지극히 위험한 문헌들이다. 어쩌면 한국교회가 성경 신학에 취약한 이유는 과도한 종교개혁 이후 신학에 치우친 탓이 아닐까 싶다. 작년부터 성경 속 우상들에 대한 자료들을 읽고, 수메르를 비롯한 이집트와 그리스도 로마 신화, 그리고 인도 신화들을 읽어가면서 성경의 배경 지식이 심각한 결핍 상태였음이 분명해졌다. 2성전기는 이스라엘의 포로 이후의 역사, 즉 신약성경의 배경사이다. 구약에 등장하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대제사장이 한 명이 두 명인 것들은 제2성전기 역사와 문헌들을 개략적으로라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수전절은 마카비 독립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생겨난 절기이다. 그동안 한국 보수 교단은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과도하게 터부시함으로 그 논쟁 속에 담긴 수많은 장점과 이로운 내용들까지 매도해 버렸다. 2성전기 문헌은 보수교단이 이해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2성전기 문헌은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제2성전기 문헌과 바울의 로마서는 비교한다. 동일한 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직간접 인용을 통해 보여준다. 기실, 지금까지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의 쌍둥이 서신이며 이신칭의라는 거절할 수 없는 신학적 관점에서 읽어왔다. 그렇게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또 새로운 바울에 관한 새 관점논쟁을 담은 책인가 싶어 긴장했다. 그러나 앞의 몇 장을 읽고 나니 기우는 사라졌다. 서문을 쓴 프랜시스 왓슨의 언급처럼 성경 문헌을 연관된 비성경적인 문헌들과 함께 읽는 고대 관습을 장려하기 위해 힘쓰는 책’(23)이다. 즉 각장을 간략하게 주해해 나가면서 제2 성전기 문헌 속에서 비슷한 주제나 동일한 맥락의 내용들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바울은 유대인이며, 베냐민 지파이며, 율법 교사였다. 동시에 로마시민권자이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 이러한 바울에 대한 이해는 바울 서신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단서들이다. 바울은 당시 구약뿐 아니라 제2 성전기 문헌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로마서를 좀더 깊이, 그리고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1세기 유대인들이 알고 있던 문화와 역사, 신학적 지식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바울뿐 아니라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제2성전기 문헌에 익숙했다. 신약의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의 본문은 맛소라(MT)가 아니라 70인역(LXX)이었다. 이것은 70인 역 안에 함께 담긴 위경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비록 제2 성전기 문헌과 당시의 유대인들의 신학적 개념들을 알고 있었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의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솔로몬의 시편의 내용과 일치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나타나는 메시아를 예수에게 적용시킨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를 권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면서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을 대리하시는 분, 기름부음을 받은 종말론적 대리자라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57)

저자는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주장들은 꼼꼼히 제2성전기 문헌과 비교하면서 바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힘쓴다. 바울은 당시의 문헌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메시아라는 모호한 정의로 방치하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을 재해석한 것이다. 바울의 해석은 혁명적이다. 바울은 스스로 율법으로 흠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율법으로 결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3:20) 구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선언한다. 종말에 완전한 의가 도래할 것임을 묵시 문학에서 가끔 등장한다. 조나단 A. 리니버는 에녹서에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이 에녹서에 무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녹서와 바울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에녹서는 지금이 고난의 때이고, 후에 의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바울은 바로 지금이 종말의 때이며, 이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포한다. 율법과 제한된 인원에 대한 선별적 의와 다르게 바울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4:5) 선언하신다. 이처럼 이 책은 로마서를 제2 성전기 문헌들을 비교하면서 바울의 주장들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제이슨 매스턴은 시락서와 로마서 7:1-25을 비교하며 율법과 성령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혜 전승의 영향을 받은 시락서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177)고 전제한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 아래 철저히 무능한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로마서 8장이 왜 성령의 장인지 7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의 새 관점 주의자들은 제2 성전기 문헌에 담긴 유대인들의 사상을 정확하게 읽어 냈다. 이중칭의라는 용어로 새 관점 주의자들을 제한시킬 필요는 없지만 제2 성전기 문헌은 분명히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의도는 분명하다. 바울 너머의 유대인의 정서와 신약성경의 배경을 볼 수 있게 한다. 위경과 위경, 쿰란 문헌들을 통해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신앙의 결들을 로마서와 함께 읽을 수 있다. 루터의 이신칭의 논법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제2 성전기 문헌은 불경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서를 깊고, 그리고 넓게 읽고자 한다면 이 책은 참으로 유용하다. 신약 배경사를 공부하고 싶거나, 신학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제2 성전기 문헌에 입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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