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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매일묵상] 마태복음 19:13-22 제가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by 하늘땅소망 2020. 3. 31.

3월 31일(화)

마 19:13-22

제가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본문 읽기]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말씀 묵상]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유대 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자 주님은 그들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이혼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님은 좀더 본질적인 이야기로 끌고 가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희생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수기도를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들을 꾸짖었을까요? 예수님처럼 귀한 분에게 하찮은 아이들이나 데려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하십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축복하고 기꺼이 그들을 영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효율과 성공, 화려함을 추구합니다. 교회도 종종 과도한 성장과 화려함을 추구하려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본질을 구하지 못하고 비본질을 찾아 갔습니다. 

우리의 삶도 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위해 섬기겠다고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니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내가 성공하면 주님께도 영광이 된다’라고 합리화 시킵니다. 이것이 타락의 시작합니다. 영적인 퇴보는 수단을 합리화 시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원하십니다. 인간의 영광은 주님께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본질과 비본질이 뒤바뀐 또 한 명의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청년이었고, 부자였으며,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길을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보십시오. 이 사람은 보통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영생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까 고민했습니다. 주님은 애쓰는 마음을 아시고 답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십계명이었습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과 거짓 증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이죠. 청년은 주님의 대답에 이렇게 대응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습니다. 아직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 말을 과도하게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이른 행위에 대한 문제가 없다면 율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의 순전함이 그 청년의 영적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치 루터가 기도원에 들어가 철저히 율법적이고 자기 학대에 가까운 수행을 했음에도 자유하지 못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는 자신이 삶에 중대한 뭔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무엇... 주님은 그것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네가 온전해 지고 싶다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주님의 도전은 젊은 부자청년이 가진 모든 기초를 부셔버리는 무서운 일침이었습니다. 주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정말 영생에 대해 관심이 있으냐? 너는 영생을 얻기 위해 너의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느냐?” 그는 몰랐습니다. 자신이 행한 선함과 율법적 완전함은 그가 가진 부와 명예, 그리고 학식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온유한 성품을 성령의 열매라고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부유하기 때문에 삼일을 굶어 편의점에서 빵을 훔친 자보다 거룩하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동안 부자청년이 속아온 자신의 거룩과 완전함을 완전히 깨 부셔 버립니다. 


청년은 재물이 많아 근심했고, 결국 주님을 떠났습니다.(22절) 주님의 도전을 받고 청년은 자신의 실체를 봤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심을 영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보다 지금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부와 명예의 울타리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철저히 의존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의지합니까? 재물입니까? 주님입니까?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결단과 기도

*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여 가장 중요한 것을 행하게 하소서.

*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선택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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