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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매일묵상] 3월 27일(금) 마 17:1-13 오직 예수 외에는

by 하늘땅소망 2020. 3. 26.


3월 27일(금)

마 17:1-13

오직 예수 외에는


[본문 읽기]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말씀 묵상]

산 위의 체험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 올랐습니다. 마태복음 안에서 산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 보좌를 상징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모든 제자들을 사랑하시지만 세 제자는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는 중요하고 은밀한 일에 함께 동행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막 5:37, 13:3, 14:33, 눅 8:51, 9:28) 주님께서 산이 올라 가시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어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며,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모습을 보며 얼떨결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들이 오랫동안 그곳에 있을 거란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요? 도무지 베드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절) 제자들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레 두려움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던 던지 베드로는 한 참이 흘렀어도 이 사건을 두고두고 기억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16-18]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곰곰이 생각해보면 베드로의 사역 가운데 변화산의 체험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주석가 헨드릭슨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믿음에 견고하게 해서 훌륭하고 충분한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헨드릭슨의 말은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비록 체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체험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먼저 머리의 지식으로 남을 수 있는 신앙을 가슴으로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고난과 역경이 와도 체험을 통해 믿음 안에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러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기는 너무나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금 많은 선지자 중에서 모세와 엘리야일까요?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변합니다. 율법은 곧 모세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모세와 율법을 함께 사용합니다. ‘모세의 자리(마 23:2)’, ‘모세의 책(막 12:26)’, ‘모세의 율법(눅 24;44, 요 7:23, 행 13:39 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기이하게도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다섯 번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 데, 이것은 구약의 모세의 책으로 불리는 모세오경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율법의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마 5:17) 율법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소개하는 안내 표지와 같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제자장들과 시합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인의 왕이시며, 율법의 완성자요,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이십니다. 아니,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하시며 깨웁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신적 영광 앞에서 제자들은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은 죄된 몸의 비천함으로 인해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단 10:7-9, 계 1:17) 주님은 제자들을 일깨웁니다. 그때서야 눈을 들어보니 아무도 없고 오직 예수만 그들 앞에 서 계셨습니다. 모세의 위대함과 영광, 엘리야의 위대한 능력도 결국 사라질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합니다. 참성전, 참율법, 참선지자, 참진리는 오직 예수, 예수 뿐입니다. 다른 것에 주목하지 말고 오직 예수만 보십시오. 오직 예수만이 영원한 구주이십니다.


결단과 기도

* 신비한 체험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지만 믿음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체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 오직 예수뿐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나의 전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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