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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매일묵상] 3월 26일(목) 마 16:21-28 무엇이 중하냐?

by 하늘땅소망 2020. 3. 26.


3월 26일(목)


마 16:21-28

무엇이 중하냐?


[본문 읽기]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 묵상]


베드로가 예수를 책망하다!


베드로는 멋진 신앙고백을 통해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셨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입술을 통해 그런 멋진 고백이 나오다니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19절)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이 열쇠는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질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직후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21절)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할 경악할 소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들입니다.(마 19:27, 막 10:28, 눅 5:28 등) 그들이 주님을 따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한 자리라도 얻을까 싶어서입니다.(막 10:37) 그런데 주님이 죽다니요? 그럼 주님을 따르기 위해 치른 모든 대가를 물거품이 되고,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죽으신다는 말씀을 듣고 경악했고, 주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22절) 그런데 항변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헬라어(에피티마오 ἐπιτιμάω)는 ‘책망하다’는 뜻입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을 강하게 붙들고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을 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야단치는 베드로. 우린 이러한 베드로는 보면서 ‘참으로 무례하고 불 신앙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습관을 되뇌어봅시다. 주님께서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손해를 보니까 나에게 만큼은 그렇게 하면 안 되다고 억지를 부린 적이 얼마나 많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중하냐?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23절)라고 야단을 치십니다. 주님은 이것은 사람의 일이며, 하나님의 생각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칩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사람의 일과 하나님일은 분명하게 대립된다. 먼저 사람의 일은 베드로처럼 자신의 육식적 안위만을 위해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수년 전에 어떤 분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도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청년회장까지 하며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집에 큰 고난이 닥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고 결국 더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 믿어도 필요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뿐 아니며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으로 인해 신앙을 버렸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주님은 베드로는 야단치신 다음에 자신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단지 누군가의 신앙고백처럼 속 썩이는 사람이나, 여러 가지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자신이 죽어야할 장소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라고 묻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의역하지 말고 문자 그대로 받아 보십시오. 분명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어야 하고, 자신의 목숨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습니다. 25절에서 주님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들은 잃고, 나(예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자들은 찾으리라고 약속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내세에 대한 약속, 부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전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빼앗지 못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분은 영원한 지옥에 던지시는 분입니다.(눅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무엇이 중합니까? 이 땅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것입니까? 아니죠. 성도는 영원한 날에서 받을 상급을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땅의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주님을 책망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례하고 불경건한 것인지도 모르는 체 말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이 땅의 부와 명예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까?


결단과 기도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 그것들을 주님을 위해 버릴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합시다. 오직 주님만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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