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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데살로니가 전서 1장 믿음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교회

샤마임 2020. 2. 13.

[장별설교] 데살로니가 전서 1장 믿음의 본인 된 데살로니가교회

1절 인삿말

2-10절 믿음의 본을 데살로니가교회

1. 1절 인삿말

바울과 실루아노, 그리고 디모데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실루아노는 실라의 로마식 이름입니다. 2차 전도 여행 때 함께 동행 했던 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의 데살로니가, 그리스 제2의 도시이다.

2. 2-10절 믿음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교회

인사를 끝낸 바울은 곧바로 데살로가교회에 대해 감사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세 가지 때문입니다. 3절에 보니,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입니다. 소망의 인내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할 3요소로 보았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바울 서신 곳곳에서 빈번하게 세 가지가 따로 또는 함께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세 가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1) 믿음, 사랑, 소망

ㄱ. 믿음의 역사

믿음의 역사라는 뜻을 어떠한 일을 할 때 ‘믿음으로 행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믿음으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역사는 살아가는 행위나 섬김 봉사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6에서 바울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란 표현을 통해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로 묶어 해석합니다.

ㄴ. 사랑의 수고

사랑의 수고는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삶의 방식을 뜻합니다. 믿음은 과거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에 기초하고 전제합니다. 사랑은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드러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은 함께 묶여 해석되는 것이 옳습니다. 믿음을 가졌다면 지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ㄷ. 소망의 인내

소망은 미래의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의 대상이 미래인 것이지 소망 자체는 현재 성도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방편입니다. 5:8로 가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에베소서 6:17에서 바울은 ‘구원의 투구’라고 표현합니다. 소망은 장차 미래엘 일어날 부활의 영광을 말합니다. 완전한 영화의 단계로서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27에서는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2) 믿음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 교회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 행복해 졌을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얼마나 위대했던지 그들의 소문이 마케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너머 각처에 퍼져 나갔습니다.(8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탁월했던지 5절에 보니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지식으로만 복음이 아니라 살아 역사는 믿음, 행위로 들어나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복음이 확실히 능력으로 나타난 표지를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적인 모임이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범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별히 복음을 위해서 환란을 기꺼이 참아 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나눔으로써 사도들의 본을 따랐다.”

갈라디아서 5:22에 나타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희락’ 즉 기쁨이 들어가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1:8에서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아 증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뒤나미스)’라는 동족어가 5절에서 ‘능력’이란 단어로 다시 사용됩니다. 바울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란 표현을 통해 이러한 표지들이 따로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들임을 설명합니다.

결국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주를 본 받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6절) 바울은 그들의 성숙한 신앙생활이 우리와 주를 볻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14에서 바울은 다시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주를 본 받는다는 말 속에는 6절 상반절에 소개한 대로 ‘많은 환난 가운데’라는 환경적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즉 데살로니가교회는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을 본 받았고, 고난 속에서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사랑하고 행동하며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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