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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설 교

[장별설교] 빌립보서 4장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by 하늘땅소망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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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빌립보서 4장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립보서 4장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과 적지 않게 닮아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로마서보다 훨씬 친밀하고 애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몇 가지를 조언하고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3장은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2-9절 서로 화목하라

10-20절 빌립보교회를 향한 감사

21-23절 마지막 인사

1. 2-9절 서로 화목하라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화목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권하다’라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는 ‘간청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는 단어는 ‘τὸ αὐτὸ φρονέω’인데 이 단어는 ‘생각하다’ ‘보살피다’라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마태복음 16:23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사도행전 28:22에서는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로 번역되었습니다.

행 28: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만약 단어의 의미를 그런 의도를 사용했다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랄드 호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τὸ αὐτὸ φρονέω)’ 라는 구절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의미는 '합의하다'와 같은 단순한 번역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통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개념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동일한 감정과 태도, 즉 인생의 총체적인 일치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문제는 서로 교회를 향한 열심으로 인해 일어난 의견 충돌로 보입니다. 자신만의 신앙관에 의해 옳다고 주장함으로 인해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일어난 충돌인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이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해도 그들을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 역시 생명책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비록 의견이 충돌이 있다할지라도 주의 일에 동역하며, 주님의 피로 사신 주의 백성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서로 좋은 뜻으로 주의 일을 시작하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원수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9절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권면으로 보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4절에서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조언하고, 5절에서는 ‘너희의 관용을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관용은 너그러운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항상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날마다 ‘주 앞에서(Coram Deo)’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해야하고,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 앞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울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최선으로 이끄실 것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일어나는 영적 어두움입니다.

우리는 4-9절에서 프랭크 틸만의 분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랭크 틸만은 이 부분에서 바울의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수사적으로 정교한 조언’이 네 가지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래의 네 가지 요약은 필자가 자의적 요약 정리한 것이다.]

첫째, 주님이 가까이 오시고 있다.

둘째, 하나님은 주권적이고 긍휼이 많으시다.

셋째, 세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넷째, 마지막으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따름으로써 그에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 앞의 두 원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5-7절을 지배한다. 뒤에 두 원리도 역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8-9절에서 나타난다.

결국 성도는 날마다 종말론적 삶으로 일관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바울은 기도를 권면한 다음 ‘생각하라’라고 충고합니다.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는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라’ 라는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는 ‘로고스’에서 왔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4-9절에서 다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어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4절에서 ‘기뻐하라’, 5절에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6절에서는 ‘기도하라’, 8절에서 ‘생각하라’, 마지막 9절에서 ‘행하라’라고 권면합니다. 9절의 ‘행하라’는 앞 선 네 동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쩌면 9절의 ‘행하라’라는 동사는 그리스도인의 앎과 믿음은 결국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삶으로 실천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절 하)고 위로합니다.

10-20절 빌립보교회를 향한 감사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애정이 깊다는 것은 10-20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마 생각만 해도 기쁜 것 같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절을 의역하면, ‘다시 당신들을 생각하니 주님 안에서 저의 마음이 너무나 기쁩니다.’가 될 것입니다. 아마 전에 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이제 편지하는 김에 말하려 합니다. 그것은 2차 전도여행 때 마케도냐에 도착해 어려움을 당할 때 빌립보교회가 바울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 같습니다.(15절) 바울은 이일을 기억했고, 그들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16절에 보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내와 바울을 두 번이나 도왔습니다.(16절)

[빌립보서 4:15-16]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이러한 도움에 감사하면서 칭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는 모든 적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미 풍족하다고 말합니다.(18절) 바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도움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18절) 또한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언급하고 있지만, 에베소서 5:2절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견합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이 구절은 대속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지만, 성도들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행함은 곧 그리스도의 제물로서 드려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로 돌아가 봅시다. 이곳에서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NA28] Παρακαλ ον μς, ἀδελφοί, δι τν οκτιρμν το θεο παραστσαι τ σματα μν θυσαν ζσαν γαν εὐάρεστον τ θεῷ, τν λογικν λατρεαν μν·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이며, 제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4장은 다시 9절로 돌아가 ‘행하라’는 권면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21-23절 마지막 인사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인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성도에게’ 문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문안하다는 말은 서로 마음을 나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각각’이란 단어도 생각해 봅시다. ‘각각’은 우리나라 말로는 ‘따로따로’란 의미이지만 헬라어 성경은 ‘모두’란 뜻의 ‘판타(πάντα)’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NIV 성경에는 ‘all God's people’로 번역했습니다. 즉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는 뜻이 됩니다.

“바울이 서신의 서두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모든 성도들’로 그들을 호칭했을 때에 회중의 연합을 강조했던 것처럼, 여기 서신의 결론부에서 그는 회중의 각 지체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다시금 강조한다.”[프랭크 틸만 『NIV 빌립보서』, 283]

바울의 이 권면 속에는 서로 마음이 맞거나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서로교제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22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염두에 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황제의 집 사람들에게도 전파된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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