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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후서 7장 타인을 위한 방

샤마임 2020. 1. 14.

[장별설교] 고린도후서 7장 타인을 위한 방

 

7:1은 6장에 소개하는 성도의 성전 됨을 이야기함으로 마무리 합니다. 2절부터는 바울이 얻은 기쁨에 대해 소개합니다. 7장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은 8-11절까지로 세상근심과 하나님을 향한 근심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7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4절 화해를 향한 호소

5-16절 두 가지의 근심

ㄱ. 5-7절 디도의 옴으로 얻는 위로

ㄴ. 8-12절 두 가지의 근심

ㄷ. 13-16절 디도의 소식으로 얻는 위로

 

1. 2-4절 화해를 향한 호소

 

2절을 보면 바울이 어떤 모함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부의 교인들이 바울을 불의를 행하고 해롭게 하고 속여서 빼앗은 사람들이라고 비방했던 모양입니다. 마치 교회를 몇 번 다녀본 사람들이 교인들의 헌금을 담임목사 다 가져간다는 식이었을 겁니다. 겉으로 볼 때 교회가 헌금한 것을 바울이 가져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구제하라고 준 것을 바울이 써다는 식으로 비방한 것입니다. 내용을 알 턱이 없는 일부의 사람들이 동조했고, 세력이 형성되어 바울을 비방하는데 힘을 모았던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지만 한 번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좀처럼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2절)고 권면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여기서 ‘영접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레사테(Χωρήσατε)입니다. 이 단어는 ‘마음에 방을 만들다’는 뜻을 가진 독특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NIV에서는 직역하여 ‘make room’으로 번역했습니다.

 

참으로 합당한 조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든 마음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둔다는 것은 마음 한편에 방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방입니다. 방을 마련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환대(歡待)라고 말합니다. 극진히 대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대는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며, 타인의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환대한다는 것은 위험과 위기를 전제합니다. 내 안에 낯선 타인을 맞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배신당할 수도 있고, 강도로 돌변해 나를 위협하고 소유를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만큼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일까요? 그런 내재된 위험은 감수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때 진정한 변혁이 일어납니다.

 

3절을 보십니다. 바울은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먼저 고린도교회 성도를 향해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로 인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합니다. 화해의 길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수고와 희생이 따라야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방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때 화해가 시작됩니다.

 

2. 5-16절 두 가지의 근심

 

바울은 이제 자신이 가진 마음을 고백합니다. 5절에 의하면 바울이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갔을 때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고 소아시아, 에베소에 머물다 마케도냐로 건너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바울의 육체는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사방에서 당한 환난으로 인해 밖으로 다툼이 있고, 안으로는 큰 두려움에 빠져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13에 의하면 바울은 디도를 만나기 위해 드로아에서 전도의 문이 열렸지만 심령이 편치 못해 디도를 만나기 위해 마케도냐로 건너간 것으로 보입니다. 드로아는 소아시아 지방 북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사도행전 16장으로 가면 이 부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해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에게 해입니다. 드로아에서 에게 해를 지나면 마케도냐가 있고, 마케도냐의 첫성이 바로 빌립보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교회를 시작하게 되고,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지하 감옥에서 찬양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흔들리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기 위해 디도를 만나러 마케도냐까지 갔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디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디도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디도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디도서’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6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통해 얻는 기쁨을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위로하셨다고 말합니다. 디도가 가져온 기쁨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향한 열심히 가득하다는 것입니다.(7절)

 

그런데 바울은 이곳에서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을 줍니다. 근심이라고 해서 다 같은 근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근심은 망하게 하지만, 어떤 근심은 살아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고, ‘세상 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뭘까요? 8절에 보니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9절)르렀기 때문입니다. 10절에도 보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11절에서 소개한 것입니다. 간절하게, 변증하게, 분하게, 두렵게하며, 사모하게 하고, 열심을 내게 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간절함에 일종의 열심으로 바울이 이른 것들에 대한 열망을 말합니다.

변증은 사건을 명확하게 밝히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분함은 거짓 교사들과 모함하는 자들에 대해 알게 되자 분노했다는 말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자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다시 ‘사모함’으로 나아가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입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을 내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에 진정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이러한 근심은 하면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자랑이 결코 후회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주변에서 ‘이제 고린도교회는 소망이 없어’ ‘저들은 저렇게 하다가 망할 거야’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니야 돌아 올 거야’ ‘다시 회복 될 거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믿어주고 기다려준 것에 대해 뿌듯해 한 것입니다.

 

마무리

 

화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자기 희생 없이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를 통해 뜻을 드러내십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애타는 마음으로 수많은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포기해야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때가 되자 하나님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움직였고, 그동안의 모든 고민과 걱정을 다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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