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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설 교

고린도전서 11장 한 몸이 되라

by 하늘땅소망 2019. 12. 30.

[장별설교] 고린도전서 11장 한 몸이 되라

11장은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와는 양상이 사뭇 다른 문제로 넘어갑니다. 물론 그 기저에는 고린도교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1:2-14:40에서는 예배에 관련된 세 주제들을 다룹니다. 11장에서는 여자들의 복장 문제(11:2-16)와 교회 안에서는 식사와 성만찬 문제(11:17-34)를 다룹니다. 마지막 12-14장에서는 세 장에 걸쳐 성령의 은사들을 다룹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고린도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 문제는 취향을 따라 사도들을 선택했던 문제들과 다른 듯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서로 갈라지고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바울은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의 본질이자 문제의 치료책은 오직 사랑 밖에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11장으로 돌아가 교회 안의 또 다른 문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11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단락은 2-16절까지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에 대한 문제이고, 두 번째 단락인 17-34절에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식사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2-16절 여자가 머리에 쓰는 것에 대해

17-34절 성만찬에 대한 권면

1. 2-16절 여자가 머리에 쓰는 것에 대해

첫 단락의 핵심은 3절에 있습니다. 3절을 논리적 순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머리’이며,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때 첫 단락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를 몇 가지 성경적 이유를 들어 정리합니다. 먼저는 여자의 기원은 남자입니다. 즉 여자는 남자를 통해 세상에 있게 되었습니다.(8절) 이 부분은 창세기 2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9절에서 밝힌 대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근거로 하여 10절에서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두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여자는 철저히 남자에게 종속되고 굴복해야 될 존재로 보입니다. 그런데 11절에서 갑자기 반대의 논리를 폅니다. 먼저 주 안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남자와 여자가 주 안에서 동등하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12절에서 제시합니다. 비록 최초의 여자가 남자에게서 태어났지만 이후의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여자가 남자를 낳은 것을 이야기한 다음 갑자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여자의 창조적 능력을 말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나 서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왜 여자들의 머리에 두건을 써야 한다고 말할까요?

먼저 4절에서 만약 남자가 머리에 뭔가를 쓴다면 남자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하는 것은 그 머리인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하고, 여자는 머리를 뭔가를 씀으로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5-6을 보십시오. 여성이 만약 머리카락 없이 예언을 한다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민머리를 자신이 부끄러워한다면 수건을 쓰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수건을 쓰는 것은 민머리를 가진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머리 수건을 쓰는 것을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7절에서는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를 가리면 안 됩니다. 여성은 남자의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15절로 가 보십시오. 이곳에서 바울은 여성들에게 긴 머리는 자기 자신에 영광이 된다고 말합니다. 즉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독립적인 존재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성은 남자에게서 벗어난 독립성이며, 여성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자신의 머리를 가림으로써 여성성 자체를 감추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살아갈 때 부끄러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남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면 남성성 자체가 소멸되어 하나님의 영광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됩니다. 반대로 여자가 머리에 쓰게 되면 여성성이 사라지고, 남성에게 종속되어 남성과 동일한 존재로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여자는 머리에 천을 두름으로 남성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기도하고 예언할 수 있게 됩니다. 데이비드 갈런드라는 학자는 이 부분에 이렇게 주해합니다.

“한편에서 머리 덮개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남자의 영광을 지우는 것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에서 머리 덮개는 여자에게 기도하고 예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기능한다. 머리 덮개가 한 가지 주요한 기능, 즉 남자의 영광을 가리는 것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더욱 그럴듯하다.”

우리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이기에 머리에 덮개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남자의 영광이기에, 여성들 스스로의 영광이 되는 머리를 감춤으로 남자의 권세 아래 자신을 두게 됩니다. 이것은 여자가 아닌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여자를 두게 함으로 기도와 예언의 권리를 얻게 됩니다.

2. 17-34절 성만찬에 대한 권면

이제 바울은 두 번째 문제인 성만찬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성만찬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아가페’라는 저녁 식사 모임이 있었습니다. 약간의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초기에는 저녁식사와 성만찬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1:17-34을 보더라도 그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단순한 파당의 문제를 너머 심각한 신학적 오류로 번져 나가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바울은 17절에서 ‘너의 모임이 육인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 그들을 책망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21절을 보십시오. 이곳에 보면 고린도교회는 각각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가져와 함께 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주의 만찬’(20절)으로 부릅니다. 23-26에서 바울은 복음서에 나타난 만찬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본다면 고린도교회는 주의 만찬을 대속의 의미를 묵상하거나, 감사하는 모임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능력을 과시하는 데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21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했다고 말합니다. 질서도 없고, 사랑과 긍휼도 없는 자기들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이곳에서 바울은 더욱 심각하게 그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거룩해야할 교회와 예배 시간에 먹고 마심으로 취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예수의 피로 사신 형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의 모임을 ‘해롭다’(17절)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바울은 27절에서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29절에서는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엄히 책망합니다. 그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신앙양심에 병이 들어 온전하지 못한 이들이 많아졌던 것입니다.(30절)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33절에서 바울은 ‘서로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만약 시장하면 집에서 먹고 모임에 와서는 그런 어리석은 일들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성만찬은 일반적인 식사의 개념에서 점차 현대적 성만찬의 의미로 변화되었습니다.

마무리

11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여자는 머리에 덮개를 함으로 남자의 권세 아래 있게 됨으로 이러한 행위는 여자가 교회 안에서 예언하고 기도하는 자격을 획득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 성만찬을 통해 죄를 짓는 이들을 엄히 경고합니다. 성만찬을 자신의 쾌락과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킨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피고 주의 만찬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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