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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일곱교회] 5. 사데교회(3:1-6) 죽은 교회여 깨어나라

샤마임 2019. 8. 11.

[요한계시록일곱교회] 5. 사데교회(3:1-6) 죽은 교회여 깨어나라

[성경본문]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교회 죽은 교회여 깨어나라

요한계시록3:1-6

1. 사데는 어떤 곳인가?

사데(sardis)는 두아디라의 동남쪽 약 80km에 위치하며, 서머나의 동쪽 70km 정도에 위치합니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유명하고 부유한 크로에수스의 소재지였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부유했던 사데는 사데 중간을 흐르는 팍톨로스(Pactolus) 강에서 발견된 금과 유명한 직물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사데는 수많은 상업로가 통과하는 왕의 도로(the Royal Road)의 종착지입니다. 사데는 사데는 기원전 547년부터 페르시아의 식민지가 되었고,이후 주전 334년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소아시아를 진격해 오면서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후 로마의 식민지가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사데에 헬라인들이 가장 높이 숭배하는 제우스의 신전을 세웁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사데는 셀류큐즈 왕국에 속하며 주전 281년부터 주전 191년가지 수도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주전 213년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해 재설립되어 왕성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이 때 제우스 신전 외에 아르테미스 신전이 세워집니다. 신정의 크기가 얼마다 컸던지 고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이오니아식 건축물이었습니다. 주후 17년 사데에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사데 지방 자체가 거의 소멸될 정도로 큰 타격을 받습니다. 주전 190년부터 133년까지 사데는 버가모 왕들에 의해 지배되다가 그 후에는 로마의 지배에 들어가게 됩니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버려진 사데 지역을 재건하면서 요새화 시킵니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강력한 군사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봉헌된 신전을 세움으로 위상을 드높입니다. 1세기 당시 사데는 로마의 중요한 군사적 도시로 자리매김합니다. 사데에서 유대인의 회당(벧 알파로 칭하는)이 발견되었는데, 수용인원이 무려 1000명 정도로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회당이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사데에 유대인 공동체가 상상 외로 거대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2. 사데교회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사데교회에 자신들을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3:1)로 소개합니다.

갑자기 일곱 영과 일곱 별이 등장합니다. 1:20에 의하면 일곱 별일곱 교회의 사자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일곱 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마도 사데 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일곱 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먼저 일곱이란 숫자가 두 번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일곱 영은 계시록 1:4에서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일곱 영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논쟁이 존재합니다.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지만 크게 일곱 영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학자와 천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쟁이 가장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요한계시록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요한계시록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 영을 해석할 수 있는 단서는 4:55:6입니다. 먼저 4:5부터 살펴보겠습니다. 4:5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라고 하며 그것들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구약 스가랴 4:2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스가랴 4장에 등장하는 등잔대를 4:6에 표현된 오직 나의 영이란 단어에 주목하여 성령으로 말합니다.

[4:1-6]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장의 말씀을 보면 분명 성령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에 있는 등잔대를 등잔대 곁에 있는 감람나무 서 있는데, 감람나무에서 감람유가 나오는 것처럼 인식해 버립니다. 성경은 분명한 언급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5:6로 가면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일곱 눈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눈은 사물을 인지하는 기관입니다. 눈이 하나님께 쓰일 때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말합니다. 모든 만물의 존재의 속성과 목적, 의미와 속내까지 꿰뚫어 보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눈이 바로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통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동일하게 사용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6:17에 의하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분명히 성령인 것 같지만 5:4에 더 비중을 둔다면 천사들이 분명합니다. 히브리서 1:14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그런데 천사들을 으로 표현한 내용은 들은 초대교회 당시 묵시론에 집중했던 쿰람 문서들에서 발견됩니다. 또한 구약에서 하나님과 천사를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한 것을 볼 때, 충분히 천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종종 하나님의 손과 눈이 되어 세상을 두루 살피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일곱영이 성령인지 천사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곱 영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눈이라는 표현과 내가 네 행위를 한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데 교회의 숨겨진 실상을 밝히 알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입니다.

3. 책망

1절 후반부에서 곧바로 하나님의 책망이 나옵니다. 4절에 흰 옷을 입은 자라는 칭찬이 있기는 하지만 곧바로 책망을 하는 교회는 드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사데교회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책망을 하시는 걸까요? 1절 후반부를 좀더 세밀하게 살펴 봅시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보십시오.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사데는 고대 세계에서 주변의 어떤 도시보다 강력한 도시이며,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시 잊히고 크기도 작아졌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가 기원후 17년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초토화된 사데를 요새화하면서 난공불락의 성이 되었습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유명한 도시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너희들이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데 교회를 죽은 교회라는 주님의 판단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라는 명성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부유했고, 열심도 대단했고, 정치적으로 꿀릴 것이 없는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하여, “그래 좋다. 너희들이 정말 살아있는 교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죽은 교회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죽은 교회일까요? 주님은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행위입니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 같고,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죽었다는 판단을 하는 기준이 뭡니까? 바로 행위입니다. 사람의 판단에 의한 행위가 아닙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행위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육신의 행위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행위일까요? 하나님 앞에서의 행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하다하시는 행위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의 행위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닙니까? 사람들의 눈에는 열심이 있는 것 같고,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주님께서 보실 때는 도무지 의로움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5절에서 더럽히지 아니한 옷또는 흰 옷이란 표현을 통해 사데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삶의 열매들이 전혀 없다고 봐야 옳습니다. 신약에서 의 상징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합당한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옷이 단지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자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안 구원 받아 성령을 받고 자신의 육신과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다른 교회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교회가 요한계시록이 쓰일 당시 교회는 환란과 핍박 속에서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데교회는 그들이 핍박을 받거나 고난 가운데 있다는 말도 없고, 그런 느낌도 전혀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레이크 S. 키너라는 학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사데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박해가 있었다는 언급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아마도 이교 숭배를 거절한 유대 공동체가 안전한 위치를 확보했음을 반영하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관용의 혜택을 누렸음을 암시 한다.

철저히 세상적인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너무나 닮은 교회, 오히려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바로 사데교회였던 것입니다.

4. 명령

. 일깨워라(Wake Up!)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주님은 2절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강하게 서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데교회는 죽었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데사람들은 죽음’ ‘폐허라는 말에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AD 17년에 큰 지진으로 인해 온 도시가 죽음의 통곡으로 가득하고, 건물들이 무너져 폐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에 의해 도시는 고대의 명성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명성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 영적으로 죽은 사데교회를 향하여 일어나라 하십니다. 사데가 다시 부흥된 것처럼 너희도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기억하라’(Remember!)

두 번째는 기억해야 합니다. 어떻게 받았는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기억해야 합니다. 헬라어 원어 순서를 따르면 기억하라-받은 것, 들은 것을이 됩니다.

μνημόνευε ον πς εληφας καὶ ἤκουσας

우리는 여기서 주저 없이 그들이 기억해야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1:3로 돌아가 봅시다. 그곳에서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사데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복음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복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에베소 교회가 복음의 열정에서 식어짐으로 형식화 된 것처럼 사데교회는 형식화를 너머 죽음 직전까지 이른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켜야 합니다. 지킨다는 것은 회복하여 그것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며, 계속하여 순종의 삶을 살지 않게 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도둑같이’(3:3)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마치 등잔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의 비유와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임함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5:1-3]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준비되지 않는 삶은 미루는 삶입니다. 지금 기도해야하고, 지금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하는데 다음으로 미루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2-44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24:42-44]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5. 약속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흰 옷을 입을 것이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흰 옷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입는 옷이며,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두 번째 약속은 이름에 대한 약속입니다. 사데교회는 이름즉 명성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는 명성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명성이어야 합니다. 사데교회는 역설적 표현이 많습니다. 죽은 교회이기에 생명을 얻어야 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기억할 때 주님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을 것입니다. 고대세계에서 사형수들은 죽임을 당하기 직전 그들의 이름이 지워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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