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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성경묵상

데살로니가전서 7. 5:12-28

by 하늘땅소망 2019.07.05


데살로니가전서 7. 5:12-28

 


[본문]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해와 묵상]

 

데살로니가 마지막 부분은 어느 곳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5:12-28까지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체적 구조에 따라 본문은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6. 다양한 의무들에 대한 가르침(5:12-22)

7.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기도(5:23-24)

8. 맺음말(5:25-28)

 

1. 다양한 의무들에 대한 가르침(5:12-22)

 

1) 영적 지도자들에게 존귀히 여기라.(12-13)

 

첫 번째는 영적지도자들을 귀히 여기라는 권고입니다. 영적지도자들에 대한 수식어를 살펴봅시다.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들은 수고하는 자이며, ‘다스리는 자이며, ‘권하는 자입니다.

 

. 그들은 수고하는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수고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수고하다(κοπιάω)’는 육신적 노동을 포함한 실제적 일들을 말합니다. 영어 번역본들은 이 단어를 ‘labored’‘hard-working’으로 번역합니다. 많은 이들이 목회자는 단순히 놀고먹는 사람으로 인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믿음의 진보를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는 이들입니다.

 

. 그들은 다스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다스리다라는 프로이스테미(προΐστημι)’먼저 가다’ ‘선두에 서다라는 의미와 더 확장된 의미로 지도하다’ ‘지배하다’ ‘관장하다’ ‘돌보다’ ‘보호하다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피루스 문헌에 보면 관리인이나 감독자, 촌장과 어린이 후견인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용례의 전반적인 의미를 종합해보면, 어떤 일에 대해 앞서서 일하고, 모범을 보이고, 지도하며 관리하는 지도자 역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목회자에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해주고 그들을 존귀히 대할 것은 충고합니다.

 

. 그들은 권하는 자들입니다.

 

권한다는 말은 조언하다의 뜻을 갖습니다. 사용된 단어 누테테오(νουθετέω)’꾸짖고 가르치다의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위험 사항이 있을 때 엄중히 경고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고하는 행위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세 번째 직문인 경고하는 일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목회자는 죄에 대해, 도덕적 타락에 대해 엄중히 경고해야 합니다.

 

바울의 화목하라는 충고 속에는 지도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크지는 않지만 불협화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의도적으로 지도자들의 역할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보이지 목회적 지도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머지 그들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미에서 화목은 지도자들이 아닌 교인들 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서로 파가 나뉘어 빌립보교회처럼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서로를 시기하며 질투했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의 문제로 돌린다해도 지도자들의 권위에 불순종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데살로니가교회의 궁극적 문제는 지도자들에 대한 충분한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성도 간의 생활(14-15)

 

바울은 이제 성도들 간의 문제를 조언합니다. 서로간의 조언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는 것(14절 상),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는 것(14절 중),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는 것(14절 하),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14절 하),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15절 상), 항상 선을 따르는 것(15절 하)입니다.

 

.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

 

개정개역판은 게으른 자로 번역되었지만 한글개역판은 규모 없는 자였습니다. 사용된 아타크토스(ἄτακτος)’ 훈련 받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상태로, 의역하면 게으름을 부리는 자를 뜻합니다. 조병수 교수는 규모 없는 자에 대해 일하지 않는 자나, 윤리적 탈선자들, 음란과 색욕에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게으른 자들을 누테테오(νουθετέω)’하라고 말합니다.

 

.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

 

마음이 약한 자는 원어적으로 무력하고 자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단어를 사회 속에서 가치 없는 사람으로 폴리스가 요구하는 사람의 기준에 미달된 인간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정황 들을 볼 때 마음이 약한 자들은 교회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힘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IVP 성경주석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4:13-5:11에서 언급한 슬퍼하고 맥이 빠진 사람으로 추측합니다. 다양한 추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맥 속에서 드러난 의미는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문제이든, 아직 유약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든, 환경적으로 열악하여 고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경우이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분명합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격려하라고 말합니다.

 

.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힘이 없다는 말은 마음이 약한 자와 비슷한 의미를 갖지만, 헨드릭슨에의하면 음란한(ἀσθενής) 자들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육신적 질병이 심각하여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이거나, 도덕적으로 무너져 누가 지켜주지 않으면 죄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보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통한 격려가 아니라, 물리적 힘이 더해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붙들다는 헬라어인 안테코마이(ἀντέχομαι)’단단히 붙들어 주다’ ‘떠 받쳐 주다라는 의인 것을 볼 때 더욱 분명해 보입니다.

 

.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라.

.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 항상 선을 따르라.

 

바로 위의 세 가지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오래 참으라는 말로 묶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사랑의 열매이자 사랑의 방식이기도 합니다.(참 고전 13:4) 오래참음은 악을 갚지 않는 것과 연관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복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보복하는 것은 정의를 필요합니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갚지 않습니다.(12:17)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잠언의 기록 속에 있으며, 바울은 잠언 말씀을 다시 반복합니다.

 

잠언 25:21-22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그리스도인이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22) 교훈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항상 선을 따라야 합니다. 선을 따른다는 말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선을 도모’(12:27)하는 것을 말합니다.

 

3) 성도 자신의 생활(16-22)

 

16 항상 기뻐하라(Πάντοτε χαίρετε)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ἀδιαλείπτως προσεύχεσθε)

18 범사에 감사하라(ἐν παντεχαριστετε)

 

세 번째 권면은 성도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기뻐할 것, 둘째는 쉬지 말고 기도할 것, 셋째는 범사에 감사할 것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철저히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 맺어지는 영적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도 간의 교제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의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절대개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 주의 말씀에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하라(~τε)”는 명령형을 사용하여 강조합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바울의 의식적 강조는 기쁨과 기도, 감사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연적인 결과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대체로 신약 속에서 하나님의 뜻(θέλημα Θεοῦ)’이 성도들의 거룩’(살전 4:3)으로 직결됩니다. ‘캐도쉬 이스라엘’(קְד֥ וֹשׁ יִשְׂרָאֵֽל)이란 이사야서 20번이나 등장하는 표현은 하나님의 속성이 거룩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역시 거룩해야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11:45) 부르스의 주장처럼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삶에서 거룩함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과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내적인 사역이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표현 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결과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일어나는 것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의 교제가 분명합니다.

 

세 가지 외에도 다른 것에 대한 명령들이 이어집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며, 악은 어떤 모양이라는 버려야 합니다. 앞선 세 가지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성령과 예언을 통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상관있는 것들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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