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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국민일보

[기독교 고전 읽기] 존 위클리프의 성만찬론(De Eucharistia 1379)

by 하늘땅소망 2019.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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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위클리프의 성만찬론(De Eucharistia 1379)

 

1. 성만찬론에 대하여

 

성만찬론은 종교개혁 시기에 가장 뜨거운 화제였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개혁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가톨릭 교회를 공격할 때 중요한 교리의 왜곡이 성만찬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루터는 중세의 화체설을 부정하며 공재설을 주장하고, 츠빙글리는 상징설을 주장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성만찬론에 극단적 차이로 인해 갈라서게 됩니다. 후에 칼빈은 영적 임재성을 주장하여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는 신학적 토대를 마련합니다. 중세에 있어서 성만찬론이 왜 중요할까요? 이것은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세 교회를 성경해석을 사제들만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심지어 일반인은 성경을 읽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성만찬의 경우도 떡은 신자들에게 주었지만 잔은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복잡하고 미묘한 역사적 흐름과 사건들이 만들어낸 교리들이지만 궁극적으로 사제들과 신자들을 엄격하게 구분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과 성만찬의 참여자격을 사제들에게 한정시킴으로 사제 집단들이 권력을 독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모든 권위를 타파하고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는 점을 강조한 위클리프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왜곡된 교리들을 비판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경 중심의 믿음은 이후 도래할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으로’의 토대를 제공합니다.

 

다섯 가지 솔라로 알려진 종교개혁의 모토는 루터가 외쳤던 ‘만인제사장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사제의 도움 없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가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에 참여하여 떡과 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영적 제사장들이며,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에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중심에 바로 성만찬론이 자리합니다. 칼빈도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바로 알았기 때문에 <기독교강요> 후반부에 지루할 정도로 길게 성만찬에 대해 논합니다. 현대의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식상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논쟁처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사활을 걸어야 하는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화체설을 공식적으로 반대한 인물은 위클리프가 처음입니다. 위클리프는 자신이 처음으로 화체설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루터의 공재설은 화체설의 다른 모양이지만, 츠빙글리는 어거스틴이 주장한 상징설을 강하게 주장했고, 다음 세대인 칼빈은 영적으로 임한다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합니다. 위클리프의 주장은 츠빙글리와 칼빈의 주장에 가장 근접합니다. 그들보다 거의 이백 년이나 이른 시기에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위클리프는 자신이 주장하는 근거를 고대의 교부들에게서 찾습니다. 특히 암브로시우스와 어거스틴, 중세의 안셀무스를 인용하여 제시합니다. 또한 니콜라우스 2세의 교령집인 <에고 베렝가리우스>을 반복적으로 인용하여 자신이 결코 이단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반대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와 토마스 아퀴나스, 던스 스코투스 등은 기존의 바른 성만찬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교회의 전통을 경박하게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탁월한 지성을 소유했다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난 이들의 주장은 결국 어리석고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목회직론>과 마찬가지로 <성만찬론> 역시 위클리프의 후대에 기록된 것으로 가장 진보적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책이 전무하여 목회직론과 동일하게 두란노아카데미 <기독교고전총서13>을 기본 본문으로 삼아 요약했습니다. 필요한 부분은 영어를 참조했으며, 직접 인용과 간접 인용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2. 내용 요약

 

성만찬을 논할 때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을 진술해야 하고, 그다음 성만찬이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몸인지 아닌지를 고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하는 봉헌된 성체, 둘째는 성체와 성물, 셋째는 성물이다. 성체 자체는 그리스도와 그이 신비한 몸인 교회와의 연합이다. 이것은 감각으로 전혀 파악할 수 없으며, 감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체 혹은 봉헌된 성체를 분할할 때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분할된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봉헌된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먹지도 못할 것이며, 받지도 못할 것이다. 성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육의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즉 믿음으로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본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치아로 으깨지 않고, 온전하고 분할되지 않은 몸을 영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성체가 들릴 때에 그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성례적으로 그 안에 숨겨져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봉헌된 성체를 육신적으로 수용하거나 씹거나 만지는 것에 있지 않으며 결실 있는 믿음으로 영혼을 먹이는 것에 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실제의 육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영이며 영적인 의미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몸을 먹고 그 음료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주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그 안에 거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주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거주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몸을 영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며 그의 피를 영적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거스틴의 말은 이렇다. 먼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적인 의미로서만 먹는다. 둘째, 짐승이나 타락할 것이라 예지 된 자가 육체적으로 성체를 씹더라도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셋째, 무가치한 자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체를 이로써 가시적으로 씹는다고 말하고 있다.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특별히 구별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먹는 것과 육체적으로 먹는 것은 다르다.

 

이제 성체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체가 일종의 양적인 크기라고 한다. 성체가 우연적 성질을 지녀야 하며, 감각적으로 보이는 성체는 연속적, 영구적 양으로서 이미 형상적으로 존재했음이 필요적이라고 말한다. 던스 스코투스는 성체가 확장되거나 응축될 수 있기에 양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베렝가르의 입장으로 종교 회의 결정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단 위에 놓인 빵과 포도주는 봉헌 후에 성체일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가 됨을 나는 믿으며, 이것들은 우리의 지각으로 성례적으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사제들의 손에 의해서 진실로 잡히고 찢기고 신자의 이에 의해 으깨짐을 나는 믿는다.”

 

베렝가르의 입장은 곧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며, 이것을 부인하면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분명한 오류이다. 교부들은 이러한 오류에 대해 분명하게 보이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의 성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암브로시우스는 ‘비록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보이더라도, 봉헌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 외에는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어거스틴 역시 보이는 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여 보이는 것은 빵과 포도주라고 말한다. 힐라리우스는 ‘비유’라고 말한다. 주님도 빵을 집어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실제의 몸과 빵을 구분하셨다. 빵은 실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키는 ‘효과적인 표지’다. 후에 베렝가르는 자신의 견해를 철회한다. 가톨릭 교회는 우연들 아래에서 본체 전체가 더 나은 본체로 변화한다고 본다. 이처럼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이라고 찬양한다면 우상숭배를 범하는 것이다.

 

어떤 신실한 자도 하나님께서 성례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평신도에게 주실 수 있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평신도가 사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례의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물과 액체, 포도주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속에 현저하게 거주하신다. 천상의 그리스도의 몸을 유념하는 평신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이 함께 거하신다. 성례는 사악한 사제보다 선한 사제에게 효과적이다. 악한 사제의 미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도 가증스러운 것이며 교회에 해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 미사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

 

봉헌된 빵이 비록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키는 효력적인 표지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다. 교부들은 빵이 그리스도의 몸과 수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진실로 믿은 적이 없다. 분명한 것은 성경의 믿음도, 거룩한 박사들도, 교회의 법들도 모든 봉헌된 빵이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하다는 입장을 요구하지 않음이 분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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