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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국민일보

[기독교 고전 읽기] 존 위클리프의 <목회직론>

by 하늘땅소망 2019. 4. 23.

존 위클리프의 목회직론

 

1. 목회직론에 대하여

위클리프의 글을 읽으면 이 사람이 과연 중세 사람인지 종교개혁가인지 헤갈립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후대에 일어날 종교 개혁가들보다 훨씬 진보적이며 파격적인 주장을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목회직론’입니다. 위클리프가 목회직론을 쓴 시기는 늦어도 1378년으로 추정됩니다. 위클리프는 목회직론을 통해 중세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폭로하고, 목회가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드러냅니다. 위클리프는 목회직에서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하나는 거룩한 삶이며, 다른 하나는 건전한 설교입니다. ‘거룩한 삶’에서는 당시 중세교회가 부를 축적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약탈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했다고 고발합니다. 왜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약탈할까요? 가난한 자는 물질적인 가난뿐 아니라 권력적 차원에서도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부의 재산을 탐욕스럽게 집어 삼켰습니다. 두 번째 ‘건전한 설교’는 일반적으로 아는 건전한 교리가 아닌 성경을 바로 읽고, 듣고, 해석하기 위한 성경 번역에 초점을 맞춥니다. 위클리프는 성경 자체가 당대에 가장 잘 알려진 언어였다고 말하며, 교회 역사 속에서도 성경은 번역되었으니 영어로도 당연히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이 번역됨으로 신자들이 직접 성경을 읽음으로 사제들의 오류와 간교함을 간파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위클리프의 저서는 독립적으로 번역된 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란노아카데미에서 출간된 기독교 고전총서를 참고하였으며, 직접 인용한 부분과 자의적으로 요약한 것은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2. 내용 요약

 

본문 1부

 

신자가 성실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그리스도의 임무는 이중적이다. 먼저는 주님의 포도나무에서 기원하지 않는 거짓 싹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복을 위해 열매를 더 잘 맺도록 가지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교회의 해가 되는 네 집단(감독, 수도사, 참사회원, 탁발 수도사를 말한다)이 있다. 목회자의 지위에 관련된 것은 두 가지다. 목회자의 거룩성과 그의 설교의 건전성이다.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이탈하는 죄를 법하게 하는 모든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신자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힘을 다해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사도들과 그 이후의 사제들은 복음적 청빈의 삶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갔다. 사도는 ‘알리멘타(필수 양식)’라는 단어로 남아도는 음식이 아니라 살아가기에 필요한 음식만을 원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양식이다. 또한 사도는 ‘테구멘타(덮개)’라는 단어로 폭풍과 폭염에서 보호해줄 적당한 집과 옷을 표현했다. 과도하게 남아도는 것을 죄다. 그러나 ‘네 집단’들은 자신들을 위해 과잉의 재산을 쌓아 사도적 규율을 한참 넘어서고 성도의 수고에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성경적인 근거로 많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고, 직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감독은 대접을 잡해야 하며 좋은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예외적으로 목회자들은 사도적 규율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들의 속셈은 분명하다. 그릇된 성경 해석을 통해 자신의 과도한 소유를 합리화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속권(secular arm)은 속세의 주권자들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두 드라크마를 로마 황제에게 주셨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도적 규율은 사제들과 감독자들에게 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포기의 첫 단계는 직무 수행에 불필요한 것은 모두 단념한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은 과잉 소유에 대한 열망을 버려야 한다. 세 번째는 사제의 성직 수행에 필요한 것 이상의 보화나 재산을 단념해야 한다.

 

이러한 논거를 통해 우리는 모든 성직자가 주님의 법에 따라 교구원의 물질적 지원에만 의지해 살도록 권고 받는다. 성직자들을 교구원의 구제로 살아야 하며, 보답으로 영적인 것들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라는 뜻이다. 성직자는 물질적 구제보다 영적인 구제가 더 영예롭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자신의 살이 아닌 덕의 목장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영적으로 살찌워야 한다.

 

교구의 목회자들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음욕과 탐욕에 빠져 있다. 부부관계를 넘어 노골적인 간음을 행한다. 교인들은 이러한 사제들의 예배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제들의 모든 기도와 일들이 하나님께 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극악무도한 그들에게 십일조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보호자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약탈자들이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악을 행하는 목회자들 역시 동일한 자들이다.

 

고위 성직자들은 어떻게 화려함과 탐욕으로 오염되어 있는가?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소유로 타락한 자들을 먹이며 세상에서 부유하게 한 것을 자랑한다. 허영심의 왕은 과도한 지출에 빠져서 사제들을 다섯 가지 방식들로 움직여 사냥개, 살찐 말, 과도한 장신구를 가난한 자들의 소유에서 얻도록 한다. 주교나 수도원장은 더 극악하여 교구 사제들보다 더욱 심하다.

 

본문 2부

 

앞서 첫 번째 직무인 거룩한 생활을 잠시 다루었다. 이제 사제의 직무의 두 번째 직부인 건전한 가르침을 살펴보자. 목회자는 자신의 인격에서 거룩함의 빛으로 빛나야 하며, 두 번째로 양 떼 앞에서 의로운 가르침으로 눈부셔야 한다. 목회자에게 삼중적 직무가 있다. 첫 번째 직무는 양 떼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적으로 먹여서 천국의 복된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직무는 양들의 질병이 지혜롭게 그들 자신과 남들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직무는 분별이 있든 없든 양들을 탐욕스러운 늑대들에게서 지켜 내는 것이다. 이 모든 직무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직무는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선한 목회자의 삶은 그의 양 떼가 닮아야 하는 거울이다. 구원받을 자는 누구든지 의로운 삶이 필수적이다. 목회자의 삶과 일도 앞서야 한다. 그리고 감명을 주는 설교는 필수적이다. 그리스도는 많은 일을 하셨지만 더 주요한 것은 가르침, 즉 설교다. 복음 설교의 중대성은 무한할 정도로 기도와 성례 집전을 뛰어넘는다.

 

하나님의 법은 영어(모국어를 말한다)로 설교되어야 한다. 반대하는 자들은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의 지식을 오류 없는 성경이다. 오순절에 사도들은 다른 종류,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설교했다. 히에로니무스(제롬)은 당대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사도들은 그들의 언어로 가르쳤다. 프랑스 국왕은 성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가? 성경과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주기도문을 영어로 번역해 암송한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이 기록된 마태복음 전체는 왜 번역될 수 없는가.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선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게 해야 한다. 반대하는 자들은 신자들이 직접 성경을 읽어 그들의 오류와 속임을 알게 될까 겁내한다. 성경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하셨다. 재산의 증대를 위해 성직을 매매하는 것은 극악무도하다. 이러한 일들을 숨기기 위해 성경 번역을 반대한다.

 

세속 권력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교회가 세속 권력을 탐하는 순간 적그리스도가 된다. 교회는 세상을 복음으로 섬겨야 한다. 세속 권력을 탐하며 소유를 갈망하는 것은 악이다. 세속 권세자들을 보라. 그들은 가인의 성을 쌓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훼방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에 반하면 교구 목회자들을 반대하고 방해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사제들을 세우기도 한다. 누가 목회자로 임명되어야 한다. 지성적으로, 감성적으로, 훈련 받은 목회자가 양 떼를 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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