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활의 증인들2 부활 후 제자들의 행적

샤마임 2019. 4. 20.

부활의 증인들2 부활 후 제자들의 행적

 

성경을 읽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이 부활의 감격이나 능력들을 체험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에도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 버린 것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약간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종종 부활에서 곧바로 사도행전으로 넘어가 맛디아를 뽑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가 역동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에서 오순절까지는 무려 50일이라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고, 그동안 제자들은 여전히 무능력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50일, 아니면 최소한 4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정확한 시간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파악 가능한 순서에 따라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1. 전제

 

지난 번에 잠깐 바울 서신과 복음서의 저작 시기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바울이 비록 나중에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지만 바울 서신들은 다른 어떤 서신들보다 가장 빠른 시기에 저술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나 야고보와 같은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과 친밀함을 가진 것도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갈라디아서나 고린도 전·후서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거나 적대적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의 학자들은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바울이 적대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에 옳지 않습니다. 유대주의적 상황에서 예수를 전하는 것과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의 차이일 뿐이지 결코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긴장관계를 있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긴장은 갈라디아서에서만 강하게 드러나고 로마서나 다른 서신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 저작 시기 논쟁, 예를 들어 남갈라디아설과 북갈라디아설의 차이에 따라 이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신약 성경의 가장 초기 문헌에 속하는 갈라디아서의 경우는 약간 예외적인 것일 수 있고, 바울이 충분히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서신들은 70년 티토 장군이 예루살렘 멸망을 시킨 이전에 기록된 것들입니다. 물론 다른 사도들의 서신들도 그렇겠지만 바울 서신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70년 이후 기록된 복음서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이나 상황 속에서 복음을 서술 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바울 서신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마태복음의 경우는 어떤 복음서보다 ‘하나님의 나라’ 신학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사후, 거의 50년 가까이 흐른 뒤에 사도들이 없는 상태에서 제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복음서를 기록했고,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건들과 신학적 주제들을 깨달았던 것일까요? 여기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의 교회론이란 거대담론을 거론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전의 파괴는 제사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말합니다. 회당은 포로기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회당이 제2성전기, 즉 바벨론 포로기를 기점으로 성전 없이 율법을 지키고, 속죄를 감당하기 위해 회당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하나의 주제가 등장합니다. 회당이 속죄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후에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이 죄인들에게 곧바로 ‘죄사함’을 선언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장면을 보던 유대인이 ‘저가 누구이기에 죄를 사하는가?’라고 격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격분은 예수님의 권세를 의심하게 함으로 오히려 확신에 이르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죄를 사하는 성전의 제사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새로운 성전으로서 그 기능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을 복음서 기자들은 죄사함의 선언을 통해 확고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과 다르게 복음서는 유독 예수님의 죄사함 선언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활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유의하여 본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긴밀한 연결고리는 성령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를 누가복음 마지막 장면에 넣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승천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만 승천을 암시하는 듯한 이야기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면 곧바로 예수님의 승천 장면이 나오고, 예수님의 소명을 제자들에게 위임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행 1:8에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성령을 제시합니다. 2장이 시작되면 곧바로 성령 강림이 일어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적들과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그 모든 이적과 기적, 그리고 설교의 핵심에는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의 조건도 역시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행 1:22)이며,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핵심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입니다.(행 2:31-32) 심지어 스데반의 설교 끝에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행 7:55)

 

부활의 핵심에는 예수님의 성전되심과 성전이 감당해야할 죄사함이 예수님의 부활에 전제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들을 살리는 기적들을 통해 실현됩니다. 복음서 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개념이 부정되지는 않지만 희미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경우는 예수의 이름이 곧 구원이고, 치유이고, 죄사함의 근거가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앉은뱅이가 베드로가 외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행3:6) 치유를 받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3:8) 베드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주의하여 보면 분명히 ‘그 이름’(행 3:16)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을 대체했고, 그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하고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읽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것이 복음서가 바울서신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로 인해 사라진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제자들의 부활 후 사건으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