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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성경묵상

[빌립보서] 16. 4:4-7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by 하늘땅소망 2018.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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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6. 4:4-7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1. 말씀 읽기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 묵상


바울의 권면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합해야 할 것을 강조한 다음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4-9절에서는 세 가지 권면을 합니다. 먼저는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며, 두 번째는 관용(寬容)하라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 : 항상 기뻐하라

 

바울은 기뻐하라(Χαίρετε)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아무렇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ἐν Κυρίῳ)’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뻐하라 주 안에서

Χαίρετε ν Κυρί

 

기쁨과 주님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복음으로 기뻐하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해도 복음(주님)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두 번 반복하여 기뻐하라 말함으로 거듭 강조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항상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기뻐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조건이 환경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빼앗아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슬픔과 낙심, 두려움과 공포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있기 때문입니다.

 

2) 이웃: 관용하라

 

관용’(ἐπιεικς)은 친절함을 말합니다. 바울은 기뻐하라는 권면 후에 너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관용을 알게 할까요? 그것은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며, 삶을 통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관용을 드러내 보임으로 그리스인으로서 살아가도록 충고합니다.

 

관용은 한 개인의 성품이 아닙니다. 관용은 관계이며,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거룩의 열매가 바로 관용인 것입니다. 관용(ἐπιεικής)의 원의적 의미는 정의(justis)를 넘어서다는 뜻입니다. 즉 법을 문자적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법의 정식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관용을 관계 속에서 적용한다면 사람을 법의 잣대로만 댈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을 잘 살펴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르게 지도하라는 뜻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이야기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으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있는 자는 권력과 결탁하여 약한 처벌을 받지만,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죄보다 가중한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처벌이 아니라 당한대로 그대로 갚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대로 되갚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권력과 결탁하거나 꼼수를 부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법의 굴레인 셈입니다.

 

그러나 관용은 이러한 소극적인 법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법은 잘못한 사람에 대한 처벌입니다. 법의 정신은 처벌이 아니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일종의 가르침이자 경고입니다. 권고는 법의 정식, 즉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원래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기도하라

 

 

바울의 세 번째 권면은 기도하라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요구가 아니라 대화이며, 전달이 아닌 교제입니다. 바울이 제시한 기도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리1: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첫 번째 원리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할까? 염려는 인간의 본성이자 육신을 입고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염려를 완전히 없애라는 뜻이 아닙니다. 염려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는 지혜가 부족한 자는 하나님께 구할 것을 말하면 동시에 의심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5-8)

 

의심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는 의심과 다른 일종의 본성에 속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에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통제하려는 타락한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자 존재의 부정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염려의 중심부에 들어가면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얻고자하는 기도의 제목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깊은 교제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신뢰해야합니다. 기도의 응답에 중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해야 합니다.

 

-원리2: 모든 일을 기도하라

 

바울은 두 번째 기도의 원리로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모든은 삶 전부를 말합니다. 사소한 것이나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상적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걷고 말하는 것들 모두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특별하고 특이한 기적에 한정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모든 일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하나님의 허락하심 때문에 가능하며, 하나님은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어느 한 부분도 자식이 감추거나 숨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미소나 몸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손과 발, 코와 입술도 사랑하며 심지어 손톱에 낀 떼까지도 사랑스럽니다. 하나님 역시 성도들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사랑하십니다. 성도에게 사소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 모든 환경, 모든 생각과 언어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며, 기도의 제목이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모든 것을 드리기를 기뻐하십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22:37)는 것입니다.

 

-원리3: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세 번째 원리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제사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자, 존재의 목적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감사는 삶에 대한 해석이자 관점입니다. 감사는 과거에 대한 감사, 현재의 감사, 다가올 미래에 대한 감사입니다. 지나온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묵상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미래 또한 선한 것으로 인도할 것을 미리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이것이 감사의 시작이자 마침입니다.

 

-약속: 하나님께서 지키신다.

 

기도에 대한 마지막 권면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는 불성실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존재이고 능력이고 사실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고 상기시킵니다. 왜 하필이면 응답하신다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일까요?

 

마음(καρδίας)이 감정에 가까운 것이라면 생각(νοήματα)은 지성에 해당됩니다. 감정과 지성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감성과 지성이 하나 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건장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용사라해도 정신이 이상해진다면 아군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성경에 자주 발견됩니다. 기드온의 공격에 미디안은 자신끼리 싸웠고, 요나단의 갑작스런 공격에 블레셋 군사들 역시 자신들끼리 칼을 겨누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이끄십니다.

 

나가면서

 

기쁨과 관용, 그리고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수단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강건하게 세워질 것을 확신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로마시민권자들이며, 부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갈리고, 서로 분쟁하며 시기하여 감정이 상해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다해도 하나 되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응답은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주님께 기도하며 평강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이 글은 빌립보서를 정경학적 주해 과정을 통해 묵상한 것으로 빌립보서는 묵상하고, 설교하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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