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Note/성경묵상

[빌립보서] 14. 3:17-21 그리스도인의 시민권

by 하늘땅소망 2018. 12. 2.

[빌립보서] 14. 3:17-21 그리스도인의 시민권

[모든 성도들을 위한 빌립보서 묵상입니다. 정경학적 관점에서 주해와 묵상을 겸했습니다. 빌립보서를 성경공부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중요한 원어를 분석하고 의미를 추론하여 성경이 말하는 원의를 나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1. 말씀 읽기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2. 묵상

시민권은 빌립보서의 핵심입니다. 현대적 표현을 빌려 사용한다면 불편한 진실입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직할 식민지로서 마케도냐 지방의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로마 본토인과 다를 바 없는 대우는 그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자부심을 심어 주었고, 스스로를 로마인들’(16:16-24)이라고 부를 만큼 로마화를 동경했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제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을 본받으라 말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경고하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합니다.

1) 나를 본받으라

나를 본받으라(Συμμιμηταί)’는 말은 주님이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바울이라도 부족하고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제랄드 호돈은 본 절을 길게 논의하면서 자신의 완전함이 아닌 하나님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바로 그 점이 바울이 말한 닮음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닮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닮고자하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그것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가 아니라 생각과 삶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함께라는 단어는 이 구절에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함께의 다른 말은 서로 협력하여가 될 것입니다. 각 개인이 바울을 닮아야 하지만, 공동체가 바울을 닮으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제랄드 호돈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숨미메테스라는 명사는, 바울이 자신의 모범을 따르려는 집단적 노력이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강조하기 위해 숨미메이스다이라는 동사로부터 만들어 낸 단어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이곳에 너희들 모두 다 함께 나를 본받으라는 베츠의 해석을 추가합니다.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노력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빌립보교회 성도를 향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17)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칭찬입니다. 빌립보교회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흠이 있고, 연약했지만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존중했고, 바울처럼 살아가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온 성도가 자신을 닮는 것을 너머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고 충고합니다. ‘눈여겨보다(σκοπέω)’는 뜻의 헬라어 스코페오(σκοπέω)’는 자신을 살펴 보라’(11:35) 또는 살피라’(16:17) 등으로 번역됩니다.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일부의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18)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2) 본받지 말라

본받으라는 권면은 곧장 본받지 말아야할 대상으로 넘어갑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먼저 그들은 멸망을 향해 갑니다. 그들은 를 섬깁니다.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이며, ‘땅의 일만 생각합니다.

- 멸망을 향하여

그들이 마침, 즉 종말은 멸망입니다. 그들에게 전혀 회개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부정하며 악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불못둘째 사망으로 특징 지워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조금도 희생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 배를 섬기는 자들

배는 자신을 위한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섬기는 신은 바로 입니다. 어떤 행위, 판단, 해석도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물질 환원주의에 빠져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거룩하고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악한 것입니다.

- 부끄러움을 자랑함

그 영광은 배만 섬기는 목적과 이유를 말합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입니다. 당연히 부끄러워해야할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할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들의 가치관은 왜곡되어 있고, 전복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부끄러운 것도 기꺼이 행하는 자들입니다.

- 땅의 일을 생각함

생각하다는 헬라어 프로네오(φρονέω)’프렌(φρήν)’에서 온 것입니다. ‘프렌(φρήν)’은 여성명사로 내장또는 심장 주위를 감싸는 횡경막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 16:23에서 동일하게 사람의 일을 생각하다로 사용되었고, 사도행전 28:22에서는 사상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땅의 것은 결국 멸망해 가는 것들이며, 오직 배만을 섬기는 이기적인 삶입니다. 이러한 것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갈망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인 것입니다.

3) 하늘을 바라보라

바울은 이제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기를 권면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πολίτευμα)하늘(우라노이스 ορανος)’에 있다는 것입니다. 코스모스가 아닌 우라노스(ορανός)의 하늘은 마태가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 나라로 표현할 때 집중적으로 사용한 단어입니다. 특히 주기도문 속에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직역해 보면 이렇습니다.

Πάτερ μν ὁ ἐν τος ορανος(6:9 )

아버지, 우리의 ()에 하늘의

바울은 하늘은 공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란 뜻에서 사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는 거기즉 하늘로부터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은 구원하시는 주님을 갈망하며 영화된 몸으로 덧입혀 지기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21)하십니다. 이전에 그리스도는 죄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낮아지심을 통해 율법 아래에서 나시고, 율법에 복종하셨으며, 배고픔과 목마름, 배신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미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이제는 다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자신의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거처, 진리의 말씀이 통치하는 그곳, 아픔과 고통도 없는 완전한 평안의 공간, 바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속의 법칙이 홍수처럼 밀려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영적 전투의 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며, 주님을 기대하면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모순과 갈등의 존재입니다. 영화의 몸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모순적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며 분투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