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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성경묵상

[빌립보서] 10. 3:1-3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법

by 하늘땅소망 2018.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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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0. 3:1-3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법


1. 말씀 읽기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2. 묵상


3장에 들어서면 그동안 긴박했던 바울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긴장과 경계를 놓지 않습니다. 3:1-16까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함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서두에 해당하는 1-3절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몇 가지의 주제로 언급합니다. 먼저는 주 안에서 기뻐할나는 것과 두 번째는 개와 행악자를 삼가라고 권면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진정한 할례파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세 가지는 주제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법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법 세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1) 기뻐하라


종말로(토 로이폰, Τλοιπόν)’는 결론이나 결어가 아닙니다. 바울이나 다른 서신 속에서 종말로는 종종 화제의 변화를 나타낼 때 사용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매우 적절하게 이 단어를 지금까지 말한 것의 결론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종말로라는 단어를 통해 이어지는 기뻐하라는 권면에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선 이야기의 결론이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약간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싶은 것입니다. 실제로 빌립보서는 1장과 2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몇 가지의 주제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는 317절에서 21절에서 언급됩니다. 마지막 결어에 해당하는 4장에 가서야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장과 3-4장은 사뭇 다른 화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1-2장에 신학적이고 교리적 측면이 강하다면 3-4장은 바울의 자기고백적이며 실천적 의미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3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가장 먼저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기뻐하라(χαίρετε)’는 명령어인 카이레테를 종종 이별의 인사말로 번역하지만 기뻐하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빌립보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는 1장에서 밝힌 대로 바울이 옥중에서 쓴 옥중서신입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단이 십자가의 쓰라림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싫어하도록 힘쓸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맛봄으로 모든 괴로움과 슬픔과 불안과 비애를 감수하는 것은 매우 흔치 않은 미덕이다.


칼빈은 예리하게 기쁨의 근원이 어디인지 밝힙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쁨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근원이자 기쁨 자체이십니다. 천국에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쁨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상실과 죽음, 실패와 절망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현실적 감각을 지녔음에도 슬픔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포, 걱정과 낙심에 빠지도록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거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노래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살아갑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기뻐할 때, 그것이 자신에게 수고한 보람이 있고, 안전하다고 알려 줍니다. 너희들이 기뻐한다면 기꺼이 수고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속에서 생명을, 절망 속에서도 기쁨을 노래하며 세상을 이긴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2) 삼가라


두 번째 동사는 삼가라(Βλέπετε)’입니다. 기뻐하면서 동시에 삼가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삼가는 것은 주의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은 것입니다. 기이하게도 바울은 개들을 삼가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개는 대부분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인 빌립보교회가 중의 대상이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주의하라는 개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개와 동의어로 바로 뒤이어 행악하는 자들’(2)할례파’(3)라고 말합니다. 2절의 몸을 상해하는 일할례를 연이어 씀으로 3절의 할례파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개라고 부르는 바로 그들, 유대인들이 개들입니다.


이곳에서 사용된 개는 충성과 헌신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 개들은 완악하며(7:6), 거짓된 것을 가르치며, 배교자들(벧후 2:22)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22:15) 개는 집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닙니다. 즉 거룩하지 않으며, 정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하며 멀리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 그 의미를 다시 유대인들에게 사용함으로 되돌려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거짓된 것을 가르치며, 복음(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떠돌아다니며 악을 일삼습니다.


삼가라라에 사용된 헬라어 원어의 기본은 브레포(βλέπω)’ ‘보다는 뜻입니다. Look가 아니라 Watch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주의하여 보고, 분별하며,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할례파)의 악은 복음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할례를 받아야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심각한 논쟁과 분쟁을 일으켰던 주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오직 복음으로거룩해질 수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할례는 매혹적인 유혹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몸에 분명하게 증표가 나타납니다. 일종의 안도감을 선물해 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거짓된 것으로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절대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율법을 자력으로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할례를 지키게 함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율법 아래 종으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3) 자랑하라


3절은 2절의 연장입니다. 2절에서 개들을 삼가라고 한 이유를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진정한 할례파(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유대인)이 누구인가? 그것은 혈통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합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성령(Πνεύματι)으로 봉사하며

성령으로는 성령에 순종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안에서~을 따라 행하다는 의미로 순종을 내포합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의지입니다. ‘봉사하다를 뜻하는 λατρεύω예배하다’ ‘섬기다다는 뜻을 갖습니다. 테일러 헬라어 사전은 이 단어가 히브리어 아바드를 번역한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기뻐해야 하듯, ‘성령 안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으며 자기 자신을 버리고 순전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καυχώμενοι 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번역이 모호합니다. 헬라어는 그리스도 예수 안(ἐν)이라고 정확하게 말합니다. 예수 안에서 자랑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것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자랑은 예수 밖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속죄 사역을 부정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러한 자랑을 거짓된 자랑이라 못 박습니다.


예수로 자랑함은 결국 육체를 신뢰하지 않은 것입니다. 딕 루카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더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인가 더함으로 완벽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망치는 것이며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복음으로 충분한 것을 믿고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나가면서


오늘 본문은 짧고 강력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개들을 삼가고,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기쁨을 앗아갑니다. 복음만이 기쁨을 줍니다. 그 안에 평안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무엇을 더하는 개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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