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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삶이란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일까?

by 하늘땅소망 2018.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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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일까?

2018.8.2


언젠가 길을 가다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에 뿌리를 내린 명아주를 본 적이 있다. 거리에 흔해 잡초 취급을 받지만 도교에서는 영생불사의 상징이며, 나물로 먹기도 하며 일사병의 치료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명아주는 약간의 독이 있는데, 약하게 사용할 때 몸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다 복용할 경우 피부병을 일으킨다. 아직 어린 명아주가 갈라진 콘크리트에 뿌리를 내린 풍경은 양가성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곧 죽을 텐데 왜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칠까?''아무리 험악한 생존환경이라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대견함'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약초가 잡초 취급을 받아야 하는 서글픈 운명이 안타깝게 보인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절박한 생존의 처절함의 연속이지만 명아주는 굳세게 살아간다. 문득 오래전 생각이 오늘을 회상하니 스쳐 지나간다. 우리 가족의 삶이 척박한 공간에 뿌리내린 명아주 같다.


일주일의 무급휴가를 받자 아내는 편의점 점장에 이틀간의 휴가를 달라고 했다. 하루는 병원에 가야 했고, 다른 하루는 온전히 아내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가 보내는 이틀간의 남루한 자들의 휴가인 셈이다. 아침 일찍 둘째에게 필요한 서류를 만들기 위해 동사무소와 농협을 찾았다. 일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곧장 부산 병원으로 이동했다. 몇 가지의 검사를 마친 후 의사와 면담했다. 다행히 통풍은 아니고 무지외반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튀어 오르고 통증이 너무 심해 통풍이 아닌가 걱정했다. 통풍이 아니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점점 심해진다고 한다. 원하는 날짜를 말하면 최대한 맞춘다고 꼭 하란다. 수술을 하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수술비용이다. 아무리 실비가 있다고 하지만 당장 수술비를 내야 하는 형편도 되지 않는 우리에게 이백만 원이라는 거금은 무겁게 다가온다. 여유와 교양은 잉여 재정에서 나온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것이다.



오래전, 어느 기사에서 유엔 대표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국들의 대표들은 한결같이 여유가 있고, 온유한 얼굴을 한다고 한다. 발언할 때도 목소리가 대체로 낮고 침착하다. 그러나 작은 나라 대표들은 소리를 잘 지르고, 흥분을 잘하고 발언할 때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다른 대표들에게 들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온유함과 교양이란 성격이 아니라 환경이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렇지 않은가. 가난하고 억눌린 삶을 살아온 이들은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목소리가 높지 않은가. 내가 보기엔 틀리지 않는 주장이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찌 살겠는가.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와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다. 주차장 앞에 맛나 보이는 두 곳이 보인다. 한 곳은 전주 남문 토종 순댓국, 다른 하나는 두보완당이다. 나중에 오면 두보완당집에 가기로 하고 오늘은 토종순대국을 먹기로 했다. 순댓국 두 그릇과 만두 일 인분을 주문했다. 참 오랜만에 외식을 한다. 핍절한 삶은 외식조차 사치스럽게 만든다. 당장 내야 할 집세와 전기세 등도 도무지 낼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면서 숨통이 약간 트였다. 그러나 둘이 합해도 이백도 안 되는 처절한 삶이 아닌가. 잘 걷지도 못하는 아내가 편의점을 알바를 시작할 때 하늘도 무너지고 땅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픈 무릎을 숨기고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들어간 내 직장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무거운 짐을 나르다 무릎에 통증이 시작되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일을 하니 얼마의 돈이 들어오고 우린 그것으로 병원을 찾았고, 몇 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있다. 먹는다는 것은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사역이다.


맛이 일품이다. 순댓국도 맛이 좋았지만 만두가 일품이었다. '사갈까?' 집에 애들이 생각이 나서 순간 멈칫한다. 애써 아이들 생각을 누르려고 하지만 목은 벌써 멘다. 그래도 꿋꿋하게 먹었다. 순댓국집을 나오면서 다음에 오면 완당 집에 꼭 가자고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양산 휴게소를 지나 언약 쪽으로 빠지는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엔진이 멈췄다. 순간 놀래서 다시 달리는 중에 시동을 켰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대형 화물차들과 수많은 차들이 앞질러 간다. 오른쪽 합류 도로에서도 수많은 차들이 밀려들어온다. 순간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다. 차분하게 차들을 피해 탄력을 받은 그대로 길가에 세웠다. 다행히 더 이상 큰 사고는 없었고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타임벨트가 나갔다고 한다. 비용만 80-90만 원 정도. 앞이 캄캄하다. 아내가 편의점을 그만두지 못한 것은 둘째의 기숙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틀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집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라디에이터가 금이 가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또 수십만 원이 추가된다. 그동안 아내가 일한 것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집에 있는 모든 돈을 끌어모아도 50만 원 이상 만들 수가 없다. 하는 수없이 급전대출을 받기로 했다


마음이 한없이 무너지는데 아내는 그 틈에 감사의 제목을 생각해 낸다.

병원에 다녀온 후라서 감사

위험한 도로였는데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감사

역시, 아내는 언제나 하나님의 중심의 사고를 잃지 않는다.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삶의 의미를 놓지 않는다. 부족한 나의 믿음을 일으켜 감사의 자리로 데려가는 아내가 있어 좋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일한 모든 수입이 사라졌다. 살아감은 제로섬게임(zero-sum game)과 같다. 더할 수도, 감할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내일, 우리는 다시 제로로 돌아간다. 그래도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에 오늘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감사할 수 있기에.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곳에 우리가 무엇을 더하고 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하루 살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의 방식은 콘크리트 틈에서 자라난 명아주 같은 것일 수 있다. 척박한 생존 환경이지만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 아닐까? 믿음은 거창한 일이나 기적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란 시공 속에 성실히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인 것 같다.

 

마태복음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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