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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수박같은 아내와 바나나

by 하늘땅소망 2018. 8. 2.

수박 같은 아내와 바나나

2018.8.2


삶이란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마음이 상한 일로 가득하다가도 사소한 것 하나가 살맛 나게 만든다. 오늘 이야기는 뜻밖에 찾아온 고마운 손님 같은 이야기다




장날이면 찾아오는 수박 장사가 있다. 양산 남부시장을 가기 위해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면 수박 장사차 앞을 지난다. 집에서 남부시장 입구까지는 정확하게 907m. 홍림과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건너 투다리 가게 앞길을 지나, GS슈퍼 앞 사거리를 지난다. GS슈퍼에서 남부시장 쪽으로 우회전하여 30m 자리에 수박 차는 장날이면 변함없이 서있다. 여름이 오기 전, 수박 차는 많은 시장 장똘배기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 나는 그곳에 선 수박 차를 발견했다. 그때야 수박 차 주인의 검붉은 얼굴이 보였다. 거무튀튀하고 굳은살이 배긴 손도 보였다. 지나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갈증의 눈빛도 선명히 드러났다. 장돌 배기의 한 사람이 아닌,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존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이 닿는 곳에 눈길이 간다. 눈길이 가는 곳에 발은 딛기 시작된다. 수주 전, 나는 그렇게 수박 한 덩이를 샀다. 유난히 수박을 좋아는 아내는 생각하며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다. 가격도 저렴했지만 맛이 일품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수박보다 달콤하고 향긋했다. 아내는 행복한 얼굴로 수박을 양손으로 잡고 사각사각 먹는다.


유난히 수박이 비싼 해, 폭염으로 수박은 매 장날마다 올랐다. 마트에 판매되는 수박은 이미 이만 원에 육박하는 숫자를 자랑했다. 다음 달이 돼서야 수박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밤이 되자 수박은 나의 영혼을 삼켜 버렸다.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을 냉장고에서 꺼내 육각형 모양으로 잘라 포크로 하나씩 찍어 먹는 환상이 잠 속에서 무한 반복된다. 한 날은 잠을 자다 말고 혼자서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나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그 맛이 얼마나 좋던지 배가 불러도 더 먹고 싶었다. 그날, 화장실에 미친 듯이 들락거려야 했지만 말이다. 갈증과 더위를 동시에 물리쳐준 수박의 맛이란!



장날을 두 번 보내고 다시 장날이 돌아왔다. 아내와 함께 수박 차에서 수박을 샀다. 이번에는 두 덩이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수박을 냉장고에 넣고 시원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둘째 딸의 멋진 주먹질?로 박살이 난 수박을 부엌칼로 잘랐다. 그런데 웬걸? 수박색이 너무 빨간 것이다. 더위를 먹어서인지 당도가 너무 높은 탓인지 모르지만 수박은 흐물흐물. 두 덩이나 샀지만 두 덩이 모두 1/4도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마음이 상했다.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운 밤, 시원한 수박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행복을 앗아간 버린 것이다. 마트보다 30% 가까이 싼 덕에 행복하기까지 했던 마음이 '싼 게 비지떡'이란 생각으로 돌변했다. 다시는 그 수박 차에 가지 않으리라. 수박 하나 때문에 익명의 장돌배기는 애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관계 지움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러나 아내는 다시 그 수박 차를 찾았다. 그리고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지난번 수박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아저씨는 미안해하는 듯 안 하는 듯 수박을 하나 주며 돈을 받는다. 아내가 그렇게 용맹하다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내의 용맹함에 덩달아 나도 '불가능은 없다' 외치고 싶어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기다리지 않고 냉큼 수박을 잘랐다. 지난번 수박보다 덜했지만 많이 상해 있었다. 아내는 참을 수 없다며 수박을 당장바꿔오라고 한다.


반쪽이 난 수박을 들고 두 아들과 함께 수박 차로 다시 갔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수박을 보여 주었다. 아저씨는 미안한 듯 안 한 듯 묘한 표정으로 '미안하다'라는 말도 꺼내지 않고 돈을 환불해 준다. 기묘한 능청스러움을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가져온 수박은 다시 가져가라고 한다. 절반은 먹을 수 있으니 먹을 수 있는 부분을 먹고 버리라고 한다. 난 받은 돈의 일부를 아저씨에게 주려고 했지만 한사코 받지 않아 그냥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아내는 얼음을 꺼내 인삼 꿀물을 탄다. 뭐 하려는 것일까? 막내에게 인삼 꿀 얼음 물 탄 것을 수박 아저씨에게 가져다주라고 한다. 착하디착한 아내는 그렇게 속이 무디다. 겉은 단단하고 용맹한듯하지만 속은 어찌나 여린지 수박보다 더 여리다. 어쩜 아내는 수박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겉은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지만, 속은 달콤하고 향긋한 노지 수박.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견디어 내면서 당도 높은 수박처럼 말이다. 아내는 그렇게 살았고, 또 살아갈 것이다.


조금 있으니 막내가 검은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봉지에서 뭔가를 꺼낸다.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다.


"수박 아저씨가 줬어요."



아내는 수박 아저씨에게 내내 미안해한다. 그리고 더운 여름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수박을 파는 모습이 안쓰러운 모양이다.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아내는 한 것이다. 그러나 얼음 물은 수박 아저씨의 마음을 움직였고, 수박 아저씨는 자신의 소유의 일부를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돌려주었다. 그렇게 잘 익은 바나나는 수박처럼 여리고 여린 아내 때문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존재의 울림이란 이런 것일까? 극단적 끝에서 서로를 향해 비판을 날을 세웠지만 묵자와 맹자는 인간의 선함을 믿었다. 묵자(墨子)가 사람은 내버려 둠으로 존재의 선함이 드러난다고 신뢰한 반면, 맹자(孟子)는 개발함으로 인에 이른다고 보았다. 수박 차 아저씨는 장사하는 사람이다. 그는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하고, 소비자인 나는 금전을 소비함으로 수박이 가진 가치를 산다. 이러한 기능적 만남으로 세상이 움직인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존재의 울림은 경제학적 가치교환의 영역을 벗어나 존재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한 기능적 존재 방식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원한 꿀 인삼차 한 잔으로도 충분하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존재와 존재의 만남인 것이다.


아내는 그렇게 차 한 잔으로 존재의 울림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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