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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7. 11:8-10 아브라함,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샤마임 2018.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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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1:8-10 아브라함, 갈 바를 알지 못하나

 

1. 말씀 읽기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2. 묵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성경에서 비교할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입니다. 오늘 집중적으로 다룰 아브라함의 믿음은 세 가지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갔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죽은 것 같은 몸이었지만 후손들이 태어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바친 것에서 분명해 집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진 특징을 요약하면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주제를 함께 살펴봅시다.

1)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순종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소명의 시기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스데반의 설교에 의하면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안에서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아브라함의 자의가 아니라 아버지 데라 때문입니다. 창세기 11:31-32로 돌아가 봅시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세기는 분명하게 데라가 자신의 아들인 아브람, 하란, 그리고 손자 롯을 데리고 하란으로 갔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았지만 데라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떠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하란에 도착한 데라는 그곳에서 죽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란에서 머문 시간은 적어도 십 년에서 많게는 40년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참조, 구약인물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아할지 알지 못함에도 먼저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야할지를 정할 때 마음이 편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름에도 출발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는 말에서 몇 가지 의미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믿음으로 나아감

11:1-3절에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아브라함이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도착할 것이라는 확신한 것입니다.

. 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의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을 주시기로 약속했습니다. 만약 이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고향을 떠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신뢰했습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목적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지만 하루하루 인도하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듯 그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 년, 이십 년의 미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순종해야할 몫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주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것을 다 알려하지 말고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내일 어떤 일어날지 모르지만 오늘 수고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오기를 기대하십니다.

2) 장막에 거하고, 인내

장막은 임시적으로 만든 텐트입니다. 장막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양이나 염소를 키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그곳은 이방의 땅’(9)입니다. 아브라함은 비주류,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삶의 방식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받을 딛고 살아가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기존의 유대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방식은 히브리서 독자들과 정확하게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이 필요했다면, 약속의 땅에 거하기 이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 믿음으로 살아가야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삶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냥 살아갑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오직 생존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생존이란 그릇 안에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 고난은 인내를

살아가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주권이 없습니다. 그곳의 본토인들이 떠나라고 하면 떠나야 합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권리를 온전히 주장하지 못합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당한 일을 당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해야 합니다.

. 인내, 그리고 전승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았지만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백년의 세월이 더 지나야 합니다. 오백년의 세월은 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때와 수많은 후손들도 약속의 땅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받은 약속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열두 아들들에게, 그리고 마침내 모세가 태어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내야 합니다.


3) 성을 바라 봄, 소망

히브리서 기자는 가나안이라 말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이는 성’(10)을 바랐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기대했던 것은 단순한 가나안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이 상징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 성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 하나님께 계획하신 곳

하나님께서 갑자기 생각나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영원 전에 작정하시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필요에 따라 도시를 건설하고, 집을 세웁니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 집의 모양, 집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가는 곳은 영원 전에 이미 계획하신 하나님이 집입니다.

. 하나님께서 지으실 가 있는 곳

교회는 진리의 터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2:20) 또는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며,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만드시는 곳입니다. 그 곳은 이 땅과 같지 않습니다.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 그곳은 ’(city)이다.

영어성경은 성이 아니라 도시로 번역했습니다. 그리 옳아 보이는 번역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대의 성은 도시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성은 외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는 요새의 기능을 같이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도시와 요새가 결부된 곳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채우심의 은혜로 충만한 곳입니다.

개역개정 :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NIV : For he was looking forward to the city with foundations, whose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 하나님은 건축가

영어 성경은 하나님을 사업자와 건축가로 소개합니다.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헬라어 성경도 동일하게 ‘ἧς τεχνίτης καδημιουργς Θεός.’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 주제와 맞물리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나가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부르심과 살아감, 그리고 소망하는 것까지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사라와 아브라함의 나머지를 부분을 다루면서 또 다른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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