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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3. 6:13-20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샤마임 2018.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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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6:13-20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1. 말씀 읽기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2. 묵상

 

1) 하나님은 맹세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맹세를 하실 때,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맹세(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14)

 

구약에 없는 이 말씀은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요? 학자들은 70역을 약간 수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글성경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서에 인용된 구약은 모두 70인 역입니다. 초대교회는 70인 역을 정경으로 사용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봅시다.

 

창세기 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내용입니다. 복과 번성은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아들이 태어나야하고, 또한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도 않았고, 민족을 이루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이삭만을 낳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약속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음으로 미래의 받을 약속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삭을 출생은 불가능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일어날 모든 일도 하나님의 맹세로 인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미래가 이미 성취되도록 이끕니다. 구약의 신자들이 장막의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은 것은 짐승의 피로 인한 결과가 아닙니다. 후에 일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이 현재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자들은 죄사함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2) 맹세는 모든 일의 확정이다.

 

맹세가 무엇입니까? 반드시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맹세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맹세 안에는 저주가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의 햇불언약을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구약의 언약(베리트)는 저주의 언약입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아브라함에게 저주의 맹세를 한 것입니다.

 

맹세가 왜 중요한 마태복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봅시다.

 

마태복음 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구약에서는 분명 내 이름으로 맹세하라했습니다. <신명기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맹세 대해 부정적입니다. <레위기 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비록 부정적 의미이기는 하지만 맹세는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맹세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맹세한 사람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고 오직 사실에 대해서 맞다’ ‘아니다만을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왜 맹세하지 말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사람은 맹세하지만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실한 사람도 약속을 모두 지키지 못한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년에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갑자기 중병에 거릴 수도 있고, 사업이 몰락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맹세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유명인이나 누군가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유명한 사람을 들먹이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오직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합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17)라는 표현은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거는 것이고, 더 이상 높은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이 없고, 하나님은 절대 변치 않으신다는 놀라운 사실은 믿는 자들에게 소망과 위안을 줄 것입니다.

 

3) 우리를 위해 앞서 가진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우리도 구약의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구원의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신(프로드로무스)’은 선구자, 진격부대, 경주에서 가장 앞선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먼저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들어가신 곳은 휘장 안’(19)입니다. 즉 지성소 안입니다. 그곳은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가장은 내밀하고 은밀한 성소입니다. 대제사장이라고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 년에 단 하루 대속죄일에만 들어갑니다. 8-10장에서 성막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확신하는 삶은 신자들이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이루신다는 확신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닻은 배가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망이 없다면 떠내려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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