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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연구 신약편] 마리아(Mary)

샤마임 2018. 5. 4.
[성경인물 연구 신약편] 마리아(Mary)
 

1. 개요
마리아
헬라어 : Μαριάμ
라틴어 : Maria
Miriam

신약에서 마리아는 매우 흔한 이름이다. 구약의 미리암을 헬러어로 번역한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7명 가까이 된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로 부른다. 동방 정교회는 ‘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을 따로 사용한다. 이름에 뜻은 모호하다. 히브리어 미리암은 ‘반역’이란 뜻을 갖지만 애굽어로는 ‘사랑스러운’이란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신약의 마리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신약에 나타난 마리아들


1. 마르다의 동새 마르다.(눅10:38-42)
2. 향유 부은 마리아(요 12:6)
3. 막달리 마리아
누가는 그녀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고 한다.(눅 8:1-3)

눅 8:1-3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4. 요셉의 어머니

요세(Ἰωσῆτος)인데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다. 마가와 누가의 기록을 살펴보자.
마가복음 15:46-47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마가복음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간 여인을 ‘말달라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라’로 소개한다. 다음은 누가복음을 보자.

눅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괄호 처리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라, 다른 여자들을 소개한다.

대체로 마르다의 동생, 막달라 마리아, 향유 부은 1-3의 마리아를 동인인물로 본다. 하지만 정확하게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기회가 되면 살펴보자.

2. 생애

이후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부르는 말이고 문맥상 분간이 힘들면 다른 마리아는 ‘막다라 마리아’처럼 자세한 호칭을 사용할 것이다.

수태고지
마리아는 갑자기 등장한다. 마태복음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상태로 나온다. 누가복은 천사가 수태고지한 것을 담고 있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보다 시간적으로 앞선다. 마태복음은 마리아가 수태한 사실을 요셉이 듣지만, 누가복음은 마리아가 수태하기 전에 수태할 것은 고지한다. 누가복음의 수태고지에서 핵심적인 구절은 1:37이다.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나이가 들어 임신할 수 없는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도 임신했기 때문이다.(1:36) 성경에서 여성 불임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자주 등장한다. 사라, 리브가, 한나, 그리고 엘리사벳 등이 그렇다. 마리아의 임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은 자들이 생명을 얻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엘레사벳과 마리아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친족(συγγενής) 지간이다. 그런 어떤 사이인지 성경 상에서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일단 성경 속에서 두 사람의 사이가 어떤지 족보를 살펴보자.

먼저 요셉은 마태복음 1장 족보에 의하면 다윗의 자손이다. 남자의 가계는 법적 상속력을 가진다. 예수님은 법적으로 왕가의 자손인 셈이다. 마태복음 족보의 마지막 몇 사람은 이렇다.

엘리웃-엘르아살-맛단-야곱-요셉

마 1:15-16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족보에있다. 누가는 아비야 반열에 사가랴가 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모두 레위자손이며, 아론의 후손들이다. 대제사장 가문에 속해 있다.

눅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누가복음의 족보로 가보자.

예수-요셉-헬리-맛단-레위-멜기-얀나-요셉

눅 3:23-24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이곳에서는 요셉이 헬리의 아들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의 ‘야곱’과 누가복음의 ‘헬리’는 동일한 사람일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이며, 마태와 누가는 어떤 의도에서 족보를 다르게 표현한 것일까. 학자들의 견해를 요약해 보자.

ㄱ. 야곱(마)은 요셉의 친 아버지다. 

그러나 헬리(눅)는 외할아버지이거나 장인어른이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의 족보다. 비록 요셉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마리아 족보를 따르기 때문에 야곱이라 하지 않고 마리의 아버지이거나 할아버지인 헬리를 적은 것이다. 이런 주장은 유대적 전승에 기인한 것이며 유대교가 남자가 아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으로 편승되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이다. 디모데도 아버지는 헬라인이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기에 바울은 할례를 시킨것과 같다. 그럼에도 이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ㄴ. 수혼제로 인해 족보가 바뀌었다.

그랜트 오스본이 주장한 것이다. 즉 요셉의 원래 아버지는 야곱이었다. 하지만 야곱이 일찍 죽자 형이나 동생이었던 헬리가 요셉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이것은 족보가 가진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고 모호하다. 그럼에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ㄷ. 족보 기록상의 문제다.

혹자는 민수기 26:33, 27:4-7을 근거로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족보를 기록할 때는 딸이 아닌 남편의 이름을 족보에 기록한다. 그렇게되면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이 헬리의 아들인 것처럼 기록될 가능성이 만들어 진다.

26:33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

민수기 27:4-7

27: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상당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누가의 족보가 민수기에 근거한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누가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의 문제 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확정짓기는 불가능하다.

요한 복음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일단 성경을 살펴보자.

요한복음 19:25-26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이 본문에 의하면 마리아라는 사람들이 또 발견된다. ‘그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다. 그 다음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나오고 다시 ‘막달라 마리아’가 소개된다. 그런데 ‘이모’는 누구일까? 이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보자. 놀라운 건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글로바가 누가복음의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던 그 남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눅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마태복음으로 되돌아가면 약간 다른 기록이 보인다.

마태복음 27:55-56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가복음 15:40-41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요한복음 19:25-26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마태복음

3명,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모친 마리아, 세베대의 모친 마리아

마가복음

3명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모친 마리아, 살로메

요한복음

4명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모친 어머니,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우리는 세 곳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확실히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친모 마리아가 전혀 다르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한복음에만 유일하게 ‘예수의 어머니’라고 표현되어 있고, 두 곳은 누구인지알 수 없는 표현을 사용한다. 마태복음으로 가보자. 이곳에 야보와 세베대의 모친 마리아 두 사람이 소개된다. 틀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 중의 한명은 예수님의 친모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야고보와 요셉(요세)의 모친 마리아를 반복한다. 또 한 명의 마리아는 살로메와 세베대의 모친 마리아다. 마태와 마가가 기술하는 방벙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상 살로메와 세베대의 어머니 마리아는 동일인물이다.

열두 사도 중에 야고보가 두명이다. 보통 큰 야고보와 작은 야고보로 구분한다. 큰 야고보는 세배대의 아들이고, 작은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이다. 그렇다면 세배대의 모친 마리아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의 할머니가 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사도 요한의 형이며, 최초의 순교자다. 알패오의 아들은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이다. 그도 사도에 들어간다. 문제는 작은 야고보가 예수님의 사촌이라는 점이고, 적지 않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이며 야고보서의 저자라고 말한다.

만약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서의 저자가 동일인물이라면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친모인 마리아가 된다. 마태와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친모가 없다. 대신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를 소개한다. 후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외 두 사람은 전혀 다르게 서술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친모 마리아 =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모친 마리아
세베대의 친모 마리아 = 살로메

유대 전승에 의하면 글로바는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형제이다. 또한 글로바의 다른 이름은 알패오라고 한다. 글로바가 알패오라면 작은 야고보의 아버지는 글로바, 즉 알패오가 되고, 그의 아내는 마리아가 된다. 마태와 마가의 서술 기법에 따른다면 그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이며, 글로바는 예수의 양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의 친모가 되는 것이다. 즉 마리아는 알패오(글로바)와 결혼했고, 다른 아들들을 낳은 것이다. 이 주장의 치명적인 문제는 요한복음 19:25에서 ‘그 어머니’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주장을 계속하여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당시는 수혼제에 의한 중혼(重婚)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요셉의 이름이 예수의 탄생 이외는 기록된 곳이 없다는 점이다. 유일한 곳이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여 ‘목수의 아들’이란 표현 뿐이다. 그러나 이것조차 이상하다. 마태는 ‘그 목수의 아들’이라 말하고, 마가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마 6:3)이라 말한다. 이 대목은 요셉이 목수라는 것이 아니다. 당시 예수의 아버지가 목수였고, 예수가 그 목수의 일을 받아 목수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3:55를 보자


마태복음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이곳에 의미 심장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소개된다. 형제들이 이름은 야고보와 요셉이 나온다. ‘작은 알패의 아들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막 15:40)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본문은 다시 막 6:3에서 재현된다.

마가복음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마가복음은 예수의 직업이 목수이고, 동생이 있다고 말한다. 동생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그리고 누이들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동생은 최소한 여섯 이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누이’가 복수형을 사용했기 때문에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여동생이 있었을 것이다.

브루스 친턴이 쓴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서 야고보는 예수의 ‘형’으로 추측한다. 요셉이 일찍 죽은 이유는 그가 나이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4세기 에피파니우스의 주장을 빌어와 설명한다. 에피파니우스는 요셉은 이미 야고보가 있었고 아내는 죽었다. 요셉은 야고보가 있는 상태에서 마리아와 재혼한다. 이러한 에피파니우스의 주장은 2세기 문헌인 [야고보원복음]과 [베드로 복음]에서도 지지한다. 문제는 에피파니우스의 주장을 인정하면 예수는 막내가 되고 다른 형제들과 누이들은 요셉의 전 부인의 아이들이 된다. 브루스 칠턴은 에피파니우스의 주장을 약간 수정하여 야고보만을 요셉의 전부인이 낳은 배다른 형제이며 나머지는 요셉과 마리아 사이의 자녀로 본다.(<현대 신약성서연구> 중 브루스 칠턴의 ‘예수의 형제 야고보’을 정리함)

야고보의 문제는 마리아의 친족 관계를 풀어내는 중요한 열쇠지만 아직 관심만 높을 뿐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여기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먼저, 아론의 후손인 엘리사벳과 유다지파인 마리아는 친족관계이다. 이것은 성경이 친히 밝히고 있다.

둘째, 그러나 어떤 혈연 관계를 통해 친족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는 마리아가 유다 지파가 아닐 수 있다. 아버지의 계열이 유다지파이기 때문에 어머니 계열로는 유다 지파가 아닐 가능성도 제기된다. 즉 마리아의 족보는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그런 족보가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족보는 마리아가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 마리아가 유다 지파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즉 그의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레위지파와 결혼함으로 확실한 아론의 후손인 엘리사벳과 친족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벳이 거주하는 곳은 ‘유대 한 동네’(눅 1:39)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족보로 인해 ‘실제로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조셉 A. 피츠마이어 <앵커바이블 누가복음> p.777)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가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수태고지를 받고 마리아는 유다 지방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친족인 엘리사벳과 삼개월 정도 머물다 다시 유다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호적을 위해 베들레힘으로 내려간다. 갈릴리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50km정도이다. 이삼일 정도 걸리는 곳이기에 산달이 다 되어 내려갔을 것이다. 산달이 다 된 산모가 그 먼 거리를 간다는 것은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런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결국 베들레헴에 도착하지만 여관이 없어 외양간에 잠을 청하다 예수를 출산한다.

예수의 출생은 마 2:1-12과 눅2:1-21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마굿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마태복음은 ‘집’(οἰκίαν)이다. 그러나 누가는 여관(κατάλυμα)이 없어 구유(φάτνῃ)에 뉘였다고 말한다. 약간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여관이란 단어가 눅 22:11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숙박시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눅 22: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κατάλυμα)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렇다면 마태복음의 집(οἰκίαν) 예수가 태어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가능성이 많다. 즉 마태복음은 탄생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적을 한 다음 곧바로 원래 집으로 돌아갔지만 요셉의 가족은 예수가 태어남으로 이동이 어려워 베들레헴에 계속 머물렀던 것이다. 누가는 예수가 팔일 만에 율법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눅 2:21-24

21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할례언약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한 것으로 대대로 이어진다. 할례를 태어난지 팔일이 되는 날이다.

창17:10-12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애굽에서 다시 갈릴리로

동박박사들이 돌아간 후 헤롯이 베들레헴 유아 학살을 만 2년이 지났을 때다. 그렇다면 요셉은 최소한 1년 이상을 베들레헴에 있었을 것이다. 그랜트 오스본은 2년으로 계산하지만 이 시간은 너무나 멀리 잡은 듯하다. 그러다 천사의 지시를 받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으로 내려 간지 얼마 되지 않아 헤롯 대제가 죽는다. 다시 유대로 돌아왔지만 유대는 헤롯의 가장 난폭한 아들 헤롯 아켈라오가 통치한다.

마태복음 2:22-23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잠깐 유대 지역의 왕들을 살펴보자.

헤롯 대제(B.C. 73- B.C. 4)

예수님의 탄생과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의 장본인

세 아들에게 영토를 물려준다. 아켈라오에게 자신의 전영토를 물려주지만 뜻대로 되지 못한다. 결국 유대, 사마리아, 사해 동남쪽인 이두메 지역의 분봉왕이 된다.

헤롯 아켈라오(B.C. 23 - A.D. 18)

유대, 사마리아, 이두메 지역 분봉왕

바리새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3천명을 학살한다. 끊임없이 유대인과 마찰한다. 유대인과 마찰로 인해 6년에 폐위되어 갈릴리로 유배되어 18년에 죽는다. 그후 그의 지역은 로마 직할령이 된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온 이유이다.

헤롯 안티파스(B.C. 3 - A.D. 39)

헤롯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와 요단동편 계곡이 주어진다. 빌라도와 원수지간이지만 예수님을 죽일 때는 마음을 합한다.

헤롯 빌립1세

골란 지역과 베다니 지역을 주었다.

헤롯 아그립바1세(A.D.37 - 44)

헤롯 대왕의 손자다. 야고보를 죽인 헤롯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어릴 시절 헤롯 대왕, 어린 시절은 헤롯 아켈라오, 공생애 기간은 헤롯 안티파스가 있었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면 아그립바 1세와 아그립바 2세가 등장한다.

갈릴리 나사렛 사람

갈릴리로 돌아간 요셉은 나사렛에 거주한다. 원래 고향이 나사렛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나사렛에 거주함으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마태는 강조한다.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그러나 구약에서 나사렛이란 말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순’에서 따온 것이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마리아는 어린 시절 가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야기에 나온다. 공생애 기간 동안 마리아는 예수를 미친 아이 취급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수태고지를 기억하고 점점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한복음 2:1-12에서는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한 것처럼 보인다.


막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마태복음 12장으로 넘어가보면 역시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마태복음 12:46-50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그곳에 가고, 부활 후에도 무덤에 찾아 간다. 그리고 부활과 승천 이후 함께 다른 제자들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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