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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기독교 공의회의 역사

by 하늘땅소망 2018. 4. 18.

기독교 공의회의 역사

 

기독교 역사 가운데 있었던 중요한 공의회를 소개합니다. 이곳에서 개론적인 내용만 다루고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포스팅에서 다룹니다. 내용은 계속하여 수정 보완됩니다. 

 

 

예루살렘 공의회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방인들의 구원은 율법이나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유대인의 종교에서 보편종교로의 첫발을 디딛 사건이다. 사도행전의 보편논쟁에 대한 이슈도 찾아보라.


일곱 공의회 기간

(1차 니케아 공의회,325- 2차 니케아 공의회,787)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aea, 325)

 

사도행전 15장을 제외한 기독교 최초의 공의회이다. 예수의 성육신을 결정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결정을 통해 삼위일체를 완성한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 물몬교 등은 이 공의회를 부정한다.

 

-아리우스 배격

-이 회에서는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사도신경이 통합된 형태로 제시된다.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aea, 325)

 

사도행전 15장을 제외한 기독교 최초의 공의회이다.  예수의 성육신을 결정한다.

 

 

콘스탄티노플 회의(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

 

콘스탄티노플은 현재의 터키 이스탄불이다.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소집된다성령의 발출 문제를 다룬다아리우스를 파문한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된다고 선언하여 성령도 하나님임을 확정한다. 이로 인해 아리우스파, 사벨리우스주의, 아폴리나리스 주의, 호모이시오스주의자들이 배척된다.

 

갑바도기아 세 교부 중 한 명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가 공을 세운다.

 

에베소 공의회(Concilium Ephesinum 431)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과 콘스탄티노플 주교인 네스토리우스간의 논쟁으로 인해 소집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미 결정되었지만 여전히 교회는 예수의 신성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다. 제국이 이로 인해 양분된 지경에 이르자 비잔티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가 공의회를 소집하여 해결하려 한다.

 

이 회의에서는 예수의 육신의 모친인 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skos) , 성모(聖母)라고 부를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예수의 신성을 존숭하여 성모라 불러야 한다는 키릴과 이를 부정하는 네스토리우스의 논쟁이 핵심이다. 문제는 네스토리우스가 예수의 신성을 정의하면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독립된 두 개의 자립존재(휘포스타시스)로 설명한다. 그는 테오토코스(신의 어머니)보다는 그리스도토쿠스(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키릴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진 휘포스타시스라고 주장한다. 최종적으로 키릴이 승리하게 된다. 네스토리우스파는 동방정교회에 뿌리 내리고, 비잔틴이 멸망하면서 러시아로 옮겨가 러시아 정교회로 자리 잡는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중국에도 경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칼케톤 공의회(The Council of Chalcedon, 451)  

 

 

에베소 공의회에서 매듭짓지 못한 예수의 신.인성에 관한 교리를 확정한다. 451108일부터 111일까지 소아시사의 비티니아의 칼케톤(현재 터키)에서 열렸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독립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으로 확정한다. 하나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를 넣어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553)

 

기존의 공의회를 재확인함. 아리우스주의와 네스토리우스파를 단성론으로 정죄하고 배격함.

온전하지 못한 공의회. 이후 교회는 더욱 혼란에 빠져들어 간다.

 

단의론(單意論, Monothelitism)이 제기됨

 

단의론은 단의지론(單意志論), 단일의지론, 일의론(一意論)으로도 부른다. 단의론은 인간의 의지는 없고 신의 의지, 즉 신성이 예수의 의지이며 그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610-638)였던 세르기우스(Sergius)는 대표적 단일 의지론자이다. 이 일로 인해 교회는 혼란에 혼란이 이어진다.

 

3차 콘스탄티노폴 공의회 (680-681)

 

단성론자 단죄하고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재확인

교리 확정은 없다. 다만 단의론에 대해 정의 한다.

그리스도가 두 개의 의지를 따르며 인간으로서의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에 종속된다고 정리한다.

 

퀴니섹스툼 공의회 (692)

 

트룰로 공의회라고도 함. 2·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관련된 교회법 102개조 공포. 동방교회는 찬성하였으나 로마 교황은 거부함.

 

2차 니케아 공의회 (787)

 

성화상에 그려진 성인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것을 부활시켰다. 많은 개신교 교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대신 성화상에 존경을 표하는 것을 단죄한 754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존중한다.

 

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869-870) 포시우스 총주교 파문, 동서방 교회의 분열 야기.

 

*단일신론(Monarchianism), 단성론(單性論, Monophysitism), 단의론(單意論, Monothelitism)

 

[관련도서]

레오 도널드 데이비스 <초기 그리스도교 에큐메니컬 7대 공의회 - 그 역사와 신학> 이기영 역, 대한기독교서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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