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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

요한 서간 강해(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by 하늘땅소망 2018. 3. 6.

요한 서간 강해(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아우구스티누스 / 최익철 옮김 / 분도출판사

*이 글은 마이트웰브에 기고한 글입니다.


1. 들어가면서


요한서신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신서로 통합니다. 어거스틴의 요한 서간 강해는 최고로 아름다운 문헌으로 불립니다. 히포의 주교로서 교인들에게 행한 이 설교들은 어거스틴의 성경 묵상에 대한 이해를 끌어옵니다. 원제는 ‘In Episto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로 번역하면 파르토스에게 보낸 요한 서간 강해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파르토스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어떤 의미로 보낸 편지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서간 강해서가 완성된 후 자신의 친한 파르토스라는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누군가에게 보낼 때, 그 대상은 당시의 친분이 있는 저명한 사람이든지, 친구, 아니면 권력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제 찾을 수 없는 파르토스라는 독자가 아닌 실제로 설교를 들었던 교회의 성도로서 본 설교를 읽기를 권합니다.


2. 배경과 이유


어거스틴의 요한 서간 강해는 부활 축제 시기에 히포 교회의 신자들에게 행한 성경 특강입니다. 즉 요즘의 말씀 사경회와 비슷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활 직전까지 요한복음을 강해한 어거스틴은 축제 기간에 특정 본문을 정해 강해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요한복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사랑이란 주제로 강해하기 위해 요한 서신서를 선택합니다. 요한복음 강해를 잠시 접어두고 요한 서신서를 강해하게 됩니다.


당시 북아프리카 교회는 도나투스파로 인해 심각한 내분 상태였습니다. 도나투스파는 배교한 자들은 절대 교회 안으로 들일 수 없다는 강경파였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회개하면 교회가 그들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격분한 도나투스파는 어거스틴을 살인하려고까지 계획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어거스틴은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삶인지를 요한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였습니다. 당시에 설교자는 복음서 전통에 따라 앉아서 설교하고, 청중는 선 채로 들었습니다. 설교가 끝날 때까지 들었으니 아마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보통 일반 예배 전례시에 행한 것은 설교(homilia or sermo)라 하고, 성경을 풀어내는 것을 강해(tractatus)’라고 부릅니다. 청중 없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주해(commentarium)’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본 강해 집은 강해입니다. 그는 즉흥적인 설교를 했음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평상시에 말씀을 사랑했던 어거스틴의 모습이라 할 수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머리말

첫째 강해 1요한 1:1-2:11

둘째 강해 1요한 2:12-17

셋째 강해 1요한 2:18-27

넷째 강해 1요한 2:27-3:9

다섯째 강해 1요한 3:4-17

여섯째 강해 1요한 3:18-4:3

일곱째 강해 1요한 4:4-12

여덟째 강해 1요한 4:12-16

아홉째 강해 1요한 4:17-21

열째 강해 1요한 5:1-3


3. 내용 요약


머리말

머리말에서는 요한 서신을 강해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어거스틴은 요한서신서를 매우 달콤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강해가 사람들에게 불을 붙여주는 기름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랑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불씨가 있는 사람에게는 불을 키워주고, 불씨가 없는 사람에게는 불을 댕겨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하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겸손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첫째 강해 요한1 1:1-2:1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었습니다. 그는 생명이셨고, ‘처음부터 계셨습니다. 말씀을 보는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입니다. 요한은 그 말씀을 우리가 보았고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증인들은 순교자들입니다.’(61) 신랑과 신부가 하나 되듯 예수와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나타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비록 보지 못하지만 친교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고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눕니다. 하나님은 빛만 있고 어두움이 전혀 없습니다. 그분과 친교함은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아들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요일 1:)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십니다.

교만은 사랑은 없애지만 겸손은 사랑을 튼튼하게 합니다. 사랑은 죄를 없애 줍니다.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라고 고백하게 합니다.”(77)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실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85) 이십니다. 우리와 온 세상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지킬 때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참 사랑의 완성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것처럼 그렇게 걸어야 합니다.’(89) 그리스도가 모두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아직도 어둠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나투스파)은 눈이 멀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교회로부터 갈라졌습니다.

둘째 강해 요한1 2:12-17

우리의 가르침과 구원을 위하여 성경에서 읽는 모든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특히 이단자들을 논박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는 부분들은 기억 속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합니다. 이단자들은 믿음이 약하거나 게으른 이들에게 끊임없이 덫을 놓아 속이려 듭니다. 우리 주님이시오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분이 우리 죄로 말미암아 돌아가셨고, 우리 의화(義化)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107)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두 제자도 빵을 쪼갤 때 그리스도를 알아 뵙습니다.’(109)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지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성경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 주님은 부활 후 승천하셨고 마지막 날에나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려 오실 것’(109)입니다.

어떠한 구약 성경이든 다 그리스도를 노래합니다.”(111)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서와 시편이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은 처음부터 그분을 알았습니다.

사랑 없는 지식은 우리를 구언하지 못합니다.”(129)

악마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지만 당신과 상관없다고 했습니다.(:29) 악마들은 죄 때문에 두려워하지만 죄 사함의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사랑해도 된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보다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강해 1요한 2:18-27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뛰어가고 성장해야 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요일 2:19) 그것을 보면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나간 사람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입니다. 시련이 닥치면 어떤 이들은 쭉정이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그들은 알곡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비천한 자로 오셨고, 작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에게 부딪쳤습니다.’(165) 그분은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친교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입술이 아닌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의 연인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연인’(175)이 되십시오.

넷째 강해 1요한 2:27-3:9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악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원수는 능수능란한 싸움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불립니다. 의사 중에도 치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삶과 행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서 자신들이 불리는 그 이름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197)

세상에 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입니다.”(199) 이것이 그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 악인들은 그분을 뵙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날에 뵙게 될 것입니다. 뵙는다는 말을 향유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5:8) 그분께만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우리를 채우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순결하시듯,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시듯 우리도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아브라함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음으로 악마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악마를 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십시오.

다섯째 강해 1요한 3:4-17

하나님께 난자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요일 3:9) 그런데 앞부분에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인다 했습니다.(요일 1:8) 서로 모순되는 논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태어난 사람은 지을 수 없는 특정한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다른 죄도 없어질 것이며, 이 죄를 저지르면 다른 죄도 굳어질 것입니다.”(231)

이 죄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새로운 언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형제애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 안에 세워진 사람이 절대 지을 수 없는 죄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231)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주님께서 피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해 줍니다.”(241) 사랑이 전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른 것이 다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3:10)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형제의 궁핍한 것을 보고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머물 수 없습니다.(요일 3:17) 아직 목숨까지 줄 수 없다 해도 자신의 소유의 일부는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남는 것도 그대 형제에게 줄 수 없다면, 어떻게 형제를 위해 그대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253) 주머니의 돈은 도둑이 훔쳐 갈 수 있습니다. 그대의 형제는 지금 굶주려 궁핍합니다. 그 형제는 그대와 함께 구원된 사람입니다. 형제를 걱정하지 않고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요일 3:18)

여섯째 강해 1요한 3:18-4:3

처음부터 형제를 위해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안에 사랑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위해 죽을 수 있을 만큼 사랑이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순교자라 떠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면 보편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자랑하려고 남을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이름을 남기거나 야심으로 순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눈’(263)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증언은 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265)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요일 3:20)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내주하심을 어찌 알까요? 우리 마음 안에 형제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물어보’(289)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영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요일 4:2)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이 그분을 사람으로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합니다.”(299)

이단자들은 혀가 아니라 삶으로 부인하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부인합니다.’(301)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스스로 찢지 않습니다.

일곱째 강해 1요한 4:4-12

우리는 본향을 찾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향이 아닙니다. 본향에 가면 사랑을 실컷 마시게 될 것입니다.’(309) 사랑만이 용서합니다. 사랑은 옹졸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누구든지 교만하게 만든 다음 이겨 버립니다.”(311) 겸손하면 악마에게 이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십니다. 성자는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 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지 세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자가 하나님이시고, 성령이 하나님이시며,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이가 사랑하시니 참으로 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십니다.”(319)

악인도 세례 받을 수 있고, 악인도 예언 받을 수 있습니다.’(321) 악인도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가지고 악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기준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식별하고, 사랑만이 인간의 행동을 구별’(327) 합니다. 사랑으로 꾸짖기도 하고, 악으로 친절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겉모양도 사랑의 뿌리에서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대는 단 한 가지 짤막한 계명을 받았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침묵하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십시오. 외치려거든 사랑으로 외치십시오. 바로잡아 주려거든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십시오.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십시오. 그대 안에 사랑의 뿌리를 내리십시오 이 뿌리에서는 선한 것 말고는 그 무엇도 나올 수 없습니다.”(327)

Semel ergo breve praeceptum tibi praecipitur: Dilige, et quod vis fac: sive taceas, dilectione taceas; sive clames, dilectione clames; sive emendes, dilectione emendes; sive parcas, dilectione parcas: radix sit intus dilectionis, non potest de ista radice nisi bonum existere.

하나님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봅니다.(5:8)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랑에는 발이 있어 교회로 이끌고, 사랑에는 손이 있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사랑에는 눈이 있어 궁핍한 사람을 봅니다. 사랑에는 귀가 있어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덟째 강해 1요한 4:12-16

사랑은 달콤한 말이지만 행동은 더 달콤합니다. 사랑을 늘 말하지 못해도 사랑을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내주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사랑은 불처럼 점점 번져가야 합니다. 먼저 곁의 형제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원수지지 않은 주변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범위를 넓혀 모르는 사람도 사랑하십시오. 마지막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푼 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과 교만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사랑이나 교만은 동일하게 구제하고 섬기고 돌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백하고 순교까지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고전 13:3) 그러나 뿌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탐욕의 뿌리와 사랑의 뿌리는 다릅니다. 교만은 남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남이 봐주기를 의식하거나, 남이 본다고 선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이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홉째 강해 1요한 4:17-21

하나님은 사랑의 채무자입니다. 동물도 육신적 사랑을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면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하면 심판 날에 확신하기에 이릅니다. 심판을 믿으면 두려움이 찾아오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죽이고 내적 사랑을 키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결국 그분 그리스도가 사랑하듯 사랑하게 됩니다.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으며, 원수를 사랑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눈물을 줄 수’(395)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요일 4:18) 비록 두려움이 오지만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벌이 두려워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421)입니다.

열째 강해 1요한 5:1-3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5:6)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입술의 고백뿐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 그리스도인’(429)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도 사랑합니다. 그분이 사랑하는 것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한다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437)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요일 5:2) 하나님의 사랑은 옹졸하지 않습니다. 끝도 없고 넓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를 보내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4. 나가면서

어거스틴은 어떤 교부도 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명징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최근의 신학자들조차 어거스틴이 이끌어낸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설교는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종교성)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큰 구멍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하나님께 갈 때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쉼은 곧 채워짐이며, 다시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흘러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타인을 사랑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아직 어리거나 거듭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비록 행동은 사랑과 헌신이 있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뿌리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탐욕의 뿌리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사랑의 뿌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동경입니다. 사랑하면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며, 영원을 향한 동경입니다. 더 깊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고,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면 삶으로 고백되며, 그분의 계명을 살아내게 됩니다. 마침내 사랑은 완성되고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본서는 어거스틴이 얼마나 집요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연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즉석 설교를 속기사가 받아쓴 것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이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그 어떤 책보다 수려하고 성경적 통찰을 보여준 책이라 할 만합니다. 교부 최고의 문헌이라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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