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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장, 아브라함의 난제

샤마임 2010. 7. 13.

창22장, 아브라함의 난제


모든 것이 평정된? 다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그리고 당신이 지시한 그 곳에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삼일 간의 여행을 통해 이삭을 번제로 드렸다.(비록 천사가 제어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창22에서 몇 가지의 난제가 등장한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모순된 명령이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번제 그 자체이다.

번제는 모세 이후에 명시된 것이므로 이삭을 불태워 드리는 번제가 모세 이후의 번제와 동일시 할 수 있을까이다.


세번째는 

아브라함의 순종이 담긴 의미이다.

근본적인 내용을 찾으면 단 한가지의 난제를 안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문제는 '믿음으로'라는 단 한구절로 해석하고 난제를 풀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를 강조하는 이방인들의 교회인 로마교회에 적당항 해석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에게 '믿음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아니면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편지를 썼다면 어떻게 해석을 했을까? 이것이 궁금하다.

첫번째 난제로 돌아가 보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옳은가이다. 사람을 작아 죽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 옳은가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했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이 명령을 어떻게 해석을 했단 말인가? 

가장 원초적인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살리는 분이요. 죽이는 분이 아니시다. 이삭이 악인이거나 죽여야할 이유가 없는 존재이므로(약속의 자녀이므로) 그 명령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순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명령했고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나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알수 없는 거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 난제는 번제라는 제사에 있다.

번제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세가 태어나기 400년 전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번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원어상 살펴 보면 번제는 불태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율법적의미보다는 당시의 제사법에 준한 명령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쉽게 해결되었다.


세번째 난제를 보자.

세번째 난제는 첫번째와 통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순된 명령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풀었을까?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이렇게 풀어간다.


[롬]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 4: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롬]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본문은 백세 때 아브라함의 이삭 낳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삭을 드리라는 번제의 명령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17절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곳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라고 하나님을 표현하고있다. 무슨 말일까? 창조주 하나님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없는 이삭도, 죽은 이삭도 살리신다는 믿음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바로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신앙으로 곧바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고민하지 않고 드릴 수 있는 이유는 부활신앙, 창조신앙 때문이었다. 세번째도 난제도 풀렸다. 


이제 첫번재 난제 만이 나를 괴롭힌다. 

과연 하나님의 모순된 명령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여기서 더 나아가 아브라함은 왜 숫양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을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연결 시킬 수 있을까?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은 첫번째가 아니라 바로 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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