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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샤마임 201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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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예레미야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정독해 두 번 읽었고, 묵상할 본문은 반복해서 계속 읽고 있습니다. 본문은 한글 파일에 옮겨 정리해서 출력해서 읽고 있습니다. 일종의 <메모하며 읽기> 방식을 사용합니다. 예레미야 주석을 구입해 읽으면 가장 많이 발견한 몇 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장 길다', 다른 하나는 '가장 난해하다'입니다. 통일성이 없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예언서에 비해 통일성이 약하고, 연대기적인 것도 아니면, 여러 주제가 갈래갈래 나누어져 있습니다. 너무 길어 한 번 정독하는 데도 한 시간은 훌쩍 지나고, 내용이 너무 복잡해 읽고 나서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동안 '대충'알고 있던 예레미야와는 너무 다른 얼굴에 깜작 놀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읽지 않은 느낌이 날 정도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관련 책들을 추려 봤습니다. 집에 있는 것도 있고, 선물 받은 것까지 합하니 6권입니다. 여기서 주석은 뺐습니다. 6권을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김기석의 <끙끙 앓는 하나님>(꽃자리)는 가장 보편적인 예레미야 강해집 같습니다. 해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묵상과 강해가 어우러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강력한 끌림은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일반 교인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다음은 류호준의 <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이레서원)입니다. 월터 부르그만을 읽어 본 분이라면 류호준 교수가 얼마나 부르그만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문장력과 예레미야의 파토스가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런데 에세히 형식이 강해 성경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라는 성경을 정서적으로 잘 보여준 책이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책은 김근주의 <특강 예레미야>(IVP)입니다. 아마도 예레미야를 가장 잘 풀어낸 책이라 믿습니다. 주석과 강해, 에세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책입니다. 하지만 조금 딱딱합니다. 그럼에도 딱 한 권을 추천하라면 김근주의 책을 추천하겠습니다. 주석 없이 예레미야를 가장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다음 책은 김광남의 <한국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아바서원)입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책입니다. 묵상집도 아니고 강해 집도 아닙니다. 땅콩이란 사람이 예레미야와 나누는 대황 형식입니다. 그런 대화를 통해 한국 교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나누고, 예레미야서와 연관시켜 풀어 나갑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탄탄한 성경 신학도 저류에 흐르고 있으니 예레미야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맥컨빌의 <심판을 넘어 회복의 약속>(그리심)은 정경학적 관점에서 변증한 논문 형식의 예레미야 강해집입니다. 성기문 교수님이 번역하셨네요.. 




유진 피터슨의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IVP)는 묵상글입니다. 몇 가지 맘에 안 듭니다. 먼저 글이 작아서 힘듭니다. 2003년 출간되어서  그런지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원제는 '주'가 아닌 '말'과 함께 달려가리이다입니다. 이것은 렘 12:5 말씀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행자와도 경주하지 못하면 어찌 말과 경주하겠느냐란 뜻입니다. 벌써 낙심하여 주저앉으면 앞으로 더 큰 일을 어찌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지는 말이 달리는 모습니다. 그렇다고, 제목을 <말과 함께 달려가리이다> 하니 이상하긴 하네요..  어쨌든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깊은 영성이 담긴 책이니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예레미야서의 의미를 담기는 하지만 의역된 느낌처럼 일상의 영성 문제를 더 많이 다르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제가 궁금했던 것 이런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독자는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이 책을 편집했으며, 누구의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가?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느 책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예레미야서 안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기본적으로 어느 성경을 시작할 때는 저자, 독자,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유독 예레미야서만큼은 배경은 있지만 실제 독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유일하게 읽은 것은 <ESV 스터디 바이블>에 있는 예레미야 개론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서 독자를 포로 귀환 후 고토에 돌아온 재건 운동을 일으키는 유대인들로 상정합니다. 저작 시기도 주전 550년을 잡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난해함은 판본 맛소라와 70 인경의 번역이 적지 않은 부분이 상이하다는 점입니다. 맛소라 텍스트는 주전 6세기의 것이고, 70 인경은 주전 3세기경이니 연대기 상으로는 80인 역이 우선하지만, 이것도 장담할 수없습니다. 맛소라 사본은 처음 기록된 것을 그대로 가져왔을, 즉 편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성서 비평 맛소라 학자로 들어가면 그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글씨 하나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학자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대기적으로는 후대의 것이지만 원문 자체를 보존했을 가능성 때문에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보다 훨씬 원본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예레미야서. 절대 읽기 쉬운 책 아닙니다. 그러나 허물어져가는 조국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마음은 현대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아 중요한 책이라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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