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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책은 나의 친구

샤마임 2017. 12. 14.

[독서일기] 책은 나의 친구

20171214일 목

 

오늘이 목요일이 이었구나. 시간이 이렇게 무심히 흘러간다. 아침에 친구들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아주 어릴 적 가족보다 더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작년 우연히 그 친구를 알게 되어 연락이 닿았다. 두 번 연락했다. 한 번은 카톡으로.. 답장이 안 왔다. 한 번은 친구가 사는 에 갔다. 전화하니 시간이 안 돼서 못 만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한 번 더. 기억은 안 나는데 다시 전화했으니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세 번째 기억나지 않은 이유가 그 친구에 대한 서운함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와 그 친구가 나를 생각하는 친밀함의 정도가 달랐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보다. 다들 자신들의 삶이 바쁘니 굳이 나와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남는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가 보다. 친구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철저히 자신에게 필요한 의미를 줄만한 상황 일 때 친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예의상 거절한다.

 

예의 상 거절... 그러니까. 바쁘고 시간이 안 되는 것. 거리가 멀다는 것 등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그런 예의를 차린다. 나도 얼마나 자주 그랬던가. 누군가 나를 찾아올 때 나도 시간이 없다 한다. 그때를 돌이켜 보니 바쁜 시간 허비하며 만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판다고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정말 시간이 도무지 없어서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오늘 진해 헌책방에 다녀왔다. 1-3천 원짜리 책들이다. 오래된 책들이다. 절판된 책도 많다. 책들은 말이 없다. 그냥 내가 사면 사는 대로 따라온다. 덥다 춥다 말도 없다. 내가 놓은 곳에 그냥 놓여 있다. 절판된 책 중에 가격이 몇 배 몇십 배로 올라가는 책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들이다. 아내가 이틀 전 읽고 싶어서 찾은 <서양 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경우는 중고 가격이 싼 것은 5만 원에서 비싼 것은 18만 원까지 올라간다. 정가는 37,000원인데 말이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5권짜리 <희망의 원리>는 정가가 9만 원인데 중고 판매가가 무려 24만 원이다. 상상이 안 가는 가격이다. 오래된 책도 비싸면 만나기 힘들다. 둘 다 포기했다.

 

공자는 논어를 시작하면서 친구를 말한다. 친구가 찾아오면 좋지 않냐고. 그런데 난 친구의 필요성을 잘 모르겠다. 어쩌면 2년 동안 오랜 친구들을 새로 만나면서 느낀 배신감이랄까? 아니면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시골에 있으면서 아들의 친구 아버지가 중학교 때 친구라를 것을 알았다. 그 친구 아버지가 그의 집에 갔을 때 알려 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 내가 연락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어쨌든 어느 누구도 시골에 2년을 있는 동안 나를 찾지 않았다. 어린 불알친구들뿐 아니다. 양산으로 올라온 뒤 페이스북에서 잘 알고 지내고, 오프라인에서 인사했던 사람들조차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최근 들어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들이 나를 볼 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뭔가 말이다.

 

그래서 잘된 일인지도. 불필요하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 하루 종일 책을 친구 삼아 지낸다. 지금 고독하면 잘 되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위로 삼는다. 난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몇 명의 친구를 사귀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에콘 카펠라리의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정>이란 책이다. 가톨릭 출판사인데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독서'와 '미사 독서'를 살펴보니 마음이 무너질 만큼 나이 피상적인 독서법이 기록되어 있다. '작은 책자와 종잇조각'(103쪽)으로 대체된 나의 독서. 슬퍼진다.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읽고, 과도하게 읽어 소화불량에 걸린 것이다. 깊이는 양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다. 한 절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한다. '미사 독서'에서는 봉독을 되새기며 읽는 자의 '영적 권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회당에서 주님께 봉독을 부탁한 것처럼 말이다. 


책을 친구 삼아 오래오래 지내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말이다. 책과 아내만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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