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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삼일간의 여행

샤마임 2010. 6. 30.

삼일 간의 여행

창세기22:1-12

 

 

1.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1절 그 일(들)후에

그 일은 언제인가?

21장,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 이후에

해결1) 1-7절 무자, 이삭을 낳고

해결2) 8-21절 자녀갈등해결

해결3) 22-34절 블레셋과 갈등해결

 

모든 것이 잘 되는 시기, 잘 풀리는 시기에

 

몇 년의 공백기간.. 적어도 십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긴 침묵을 깨시고 오늘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을 무엇을 했을까? 성경은 침묵한다. 저는 이시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잊었거나 불신의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누락되어 있다. 왜일까?

-1.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불신의 삶이었기 때문에

-3. 무엇인가를 계획하기 위한 일상의 준비기간

 

바로 이때 주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무엇을 위한 부르심인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함’으로 규정한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테스트하시는가?

저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갖는다. 왜? 시험을 주시는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하나님은 얄미운 분 같다. 조용히 사는 것을 깨뜨려 혼란을 주신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하나님의 달갑지 않는 방문, 불청객

 

현실에 안주하려는 인간에게는 부당한 시험이다.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 지금까지 주신 축복을 강화해주고 더큰 비전과 꿈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요..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험은 여전히 부당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잘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갑작스런 아픔과 고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현실을 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시험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풀어야할 숙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가?입니다.

단지 충성심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것을 통해 더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곳에 계신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누리기 위해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를 사지로 몰아간다면 그것을 합당하다고 해야 할까요?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시험으로 인해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당대의 최고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공의로웠고, 부자였고, 인자했으며, 연약한자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망했고, 가난해졌고, 병들었으며, 소외되고 버렸습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사건을 이렇게 풀어 주었습니다.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신] 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물론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와 죄악 때문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허락하시고 용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이 오고 고통이 찾아오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욥처럼 말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은 믿음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만남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낯설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시되 그냥 오시지 않고, 선물을 준비해 오십니다. 그것은 환난(患難)이라는 선물입니다. 안일한 살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를 박살내 버리는 것입니다. 평안히 자고 있는 둥지를 사정없이 헤쳐버리십니다.

 

2. 아브라함의 반응과 결단

 

아브라함의 결단. 반응 무엇일까? 먼저 그는 침묵했고,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사라에게 상담을 했을까? 이렇게 말입니다.

아브라함: 여보,,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단에 받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사 라: 뭐라구요? 안돼요! 그건 안돼요. 어떻게 얻은 아이인데..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돼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는가? 침묵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어떠한 의의도 제기하지 않았으며 그대로 순복하기도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생각들이 거센 폭풍과 같이 요동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고 침묵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우리가 해석하기 힘든 순종을 요구하실 때

먼저 우리는 잠잠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의 침묵한 것처럼 여호수아가 보여준, 여리고 앞에서 침묵처럼

 

삶이 답답하고, 큰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더 피어선 박사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혀는 알아차리기도 전에 제멋대로 움직인다. 아무렇게나 말하기를 잘하며, 사악한 말을 잘도 내뱉는다’말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쳐 올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위해 변명의 말들을 쏟아 놓기 쉽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네 탓이야’ 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비겁한 실패자들의 언어 습관입니다. 첫 인류가 하나님이 말씀을 거역하고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자신에게서 책임을 찾지 않고 ‘네 탓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원망하고 불평하고 싶은 생각이 들거들랑 침묵하십시오.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 넘기지 마십시오. 차라리 침묵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아브라함의 두 번째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입니다.

중요한 것은 3절에 기록된 바로 이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히브리 원어는 이 구절의 동사에 주목하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연속적으로 동사가 사용되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와우 연속 동사라고 부릅니다. 여러개의 동작이 연속적으로 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이 기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의 등에 짐을 지우고, 종과 아들을 데리고, 나무를 쪼개고,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이르신 곳으로 갔습니다. 마치 한 동작처럼 신속하게 이루진 것입니다. 이것은 추후의 망설임도 없는 즉각적이고, 완전한 순종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삼일 간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바로 그 다음 절을 통해 3일이 지났음을 알게 됩니다.

 

삼일 간의 여행 중에 일어난 일

저는 이 본문을 접할 때마다 항상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삼일동안 아브라함과 이삭, 부자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뭔가 중요한 이야기들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궁금한 점은 ‘왜 하나님은 번제를 집 앞이나 아니면 집 근처에서 드리도록 하지 않았을까?’하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리면 이삭 죽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번제로 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이 막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거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심중에는 그런 마음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알았는지 하나님은 삼일 길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을 떠나게 한다면 우리가 잘 아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후에 이 모리아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서는 반석 위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이란 먼 미래를 내다보며 성전으로 예정하신 곳이라고 해도 될까요? 삼일이라는 기간이 어쩌면 우리 주님의 부활하신 날과 정확하게 일치 한다는 점에서도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도 바로 그곳에서 삼일 째 되는 날 부활하셨고, 아브라함도 이삭을 삼일 째 되는 날 번제로 잡으려다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2박 삼일간의 여행.. 뭔가 우리에게 심오한 교훈을 주려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성경적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을 풀어 본다면 3일간의 의미가 좀더 밝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세속적 유혹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것은 브엘세바입니다. 그럼에 모리아 산이있는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얼마일까요? 약 90km라고 합니다. 사흘동안 90km를 간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듭니다. 꼬박 삼일은 아니고 약 2틀 반나절이라면 하루에 적어도 45km를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전심전력을 다해 그 노쇠한 몸을 이끌고 걸어야 했습니다. 장정도 걷기 힘든 곳을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해 걸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여행하는 동안 낭만적인 대화나 여유로운 쉼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산을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삼일째 되는 날 모리안 산에 도착했고, 산에 올라가 제단을 쌓고 그곳에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으며, 최선을 다해 순종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때 즉각적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회하지 않고 곧바로 번제로 드릴 제단을 향하여 질주하듯 나아갔습니다.

 

큰 위기는 / 큰 결단을 요구하고

감당하기 힘든 소명은 /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명자를 만들어 냅니다.

 

3. 아브라함의 비전

 

저는 이제 세 번째로 아브라함의 즉각적 결단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먼저 12절 말씀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2절에서 가장 주목하여 볼 말씀은 후반부의 ‘이제야’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보다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다시 로마서로 넘어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신약적 관점으로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결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창조적 능력인 것처럼, 아브라함은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기의 때에 신속한 결단과 즉각적 순종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온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3일 동 안 아브라함의 꿈의 여행을 한 것입니다. 현실의 상황 속에 좌절하지 않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쏟아 부은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 현재주변은 가나안 족속이 바쁘게 살아감.. 죽음의 삼중주

그러나 죽은 것 같은 한 사람(아브라함) 의 순종으로 인류의 대역전극을 준비하시고 계심. 고난위기. 축복을 위한 준비 그릇키우기

비전을 향해 비상하는 꿈돌이

아브라함, 죽음같은 순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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