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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원리-섬김

샤마임 201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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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그림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면서 약간 침울하고 서먹 서먹한 분위기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분위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서들은 한결같이 우리들에게 최후의 만찬의 자리는 탐욕스런 제자들의 싸움터 였음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유대병정들에게 붙들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운명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베푼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누가 크냐?’라는 주제를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무리 지어야할 고통스런 십자가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에 제자들은 왕관과 왕좌의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침묵하시던 주님은 그들의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논쟁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들,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지, 결코 모순되지 않는 주장들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차디찬 물이 그들의 발을 사로 잡을 때 제자들은 그 환상에서 갑자기 깨어났습니다. 가장 천한 노예들이 하는 것은 자신들의 존경하고 따르던 예수님께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교회의 위대성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서로 기꺼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서로의 발을 닦을 때입니다. 서로에게 종이 되는 것이 바로 교회가 교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땅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나라를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셨던 동일한 원리를 가져야 합니다.


아침 일찍 온 품꾼들이 원망하고 불평한 이유는 단하나입니다. 자기들이 더 많이 희생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교회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더 대우를 받아야 하고, 내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우를 더 받아야 하고, 내가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과 새신자들과 모르는 사람들은 무시당해도 되고, 대우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집주인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것을 가지고 가라.”


섬기는 삶의 원칙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원칙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기꺼이 먼저 헌신하려는 원칙

위로 올라가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려가려는 원칙

예수와 함께 다시 살기 위해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원칙

 

섬김은 고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원리이자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그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섬김을 벗어나는 그 어떤 것도 진리는 아닙니다. 섬김은 본질이요,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장 고귀한 사역인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주님처럼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요,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류호준 교수의 설교 중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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