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ées

용사들의 세대

이준. 이진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세계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겪은 또 다른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린 어쩌면 너무 쉽게 한 생애를 의자에 앉아서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생존의 위기와 폭풍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역자들의 이야기는 송구스러울 뿐이다. 이준·이 진이란 이름은 금시초문이다. 추천사 하나 없는 낯선 존재는 누굴까? 앞 몇 장을 읽는 동안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굴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읽어 나갔다. 그리고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사역은 현재진행형이다.

볕이 좋은 상파울루의 토요일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한 문장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저자들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다른 한 권이 보인다. 2013년에 출간된 <예수님께서 내시는 식사, 오병이어>란 제목의 책이다. <용사들의 세대>LA사역의 마무리로부터 시작한다. 앞선 책 그러니까 <오병이어>는 읽지 않아 잘 모르지만 아마도 LA사역 때의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좀 더 검색하니 2013년에 크리스천투데이에 ‘LA서 매일 2천여 홈리스에게 예수 이름으로 식사 대접이란 제목으로 기사도 올라와 있다. 그해 CBS ‘새롭게 하소서에도 출연하여 간증을 나누었다. ‘나만 몰랐다는 표현이 옳은 것 같다. 멕시코의 쁄라 공동체, 브라질의 여호와의 은총(파벨라 데 데오스) 지역에서 어린이 사역.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치열한 사역 현장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두 부부의 이야기다. 소개 글은 고작 8장으로 구분된 목차가 전부다.

남루해 보이는 시작, 첫 장에서 읽혀지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121월에 LA에서는 홈리스를 위해 식당을 문을 열었다. 그 후로 매일 2천에서 4천 명 분의 음식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한다. 그러나 고정적으로 후원하는 사람이 없는 마당에 그들이 사역은 매일이 전투와 같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용사라 명했는지 모르겠다. LA 아버지 집이 월세가 밀리면서 퇴거 소송이 일어나고 우연찮게 찾게 된 멕시코에서 새로운 사역이 조짐이 보인다. 그렇게 시작된 멕시코와 브라질 사역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었다. 어찌 그리 가난한 동네만 찾아다니는지 마음이 답답할 지경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싶어 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다 배달하는 성실한 일꾼이 되고 싶었습니다.”(27)

멕시코 사역을 시작하면서 매주 한두 번씩 LA와 멕시코는 오간다. 매일 아침 음식을 가져오고, 푸드 드라이브를 나간다. 그러나 빠듯한 예산으로 기름 값’(33)도 없어 조마조마한다. 풍성한 지원으로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은 데 그것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께서 먹이시고 채우시는 것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던 이야기는 읽을 수가 없었다. 경찰에게 부탁해 그날 안으로 짐을 다 실어 날랐다. 그런데 어디로 간단 말인가? 스태프들이 마련해준 창고의 사무실에 가져온 짐을 풀고 숙소로 사용한다. 읽어 가는 동안 드는 생각, 이렇게 힘든데 계속 이일을 하고 싶을까? 두 분다 정말 대단하다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집 없이 떠돌아다녔던 적이 있어, 이 글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멕시코 사역장은 쁄라이다. 쁄라는 이사야 61장에 나오는 회복된 땅의 의미다. 이준 목사는 그곳을 보고 고아원과 신학교, 훈련터를 세우실 것을 선포하며 삽을 뜬다.(51) 공사를 시작할 수도 없는데 혼자서 삽질을 시작한다. 하나님께 하실 것을 믿으며 말이다. LA 사역을 시작할 때, 손은 아무것도 없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곳에서 음식을 제공해 준다. 이 표현이 마음을 흔든다. ‘믿음을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마음이 찢겨서 연약함으로 무릎 떨리고 있을 때’(55), 그때 하나님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그렇다. 우린 상황 속에서 두려운 감정이 짓누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쁄라에 전기가 없다. 우연히 길을 가다 포드 드라이브 자원봉사를 했던 청년을 만났다. 요즘 어찌 지내세요? 기도 제목 있으세요? “쁄라에 전기가 들어오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그의 할머니는 전기회사 회장님이었다고 한다. 해를 가릴 지붕도 없는 곳, 둘은 다시 길을 떠난다.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전부는 거는 것’(122)이라고 선포하며 말이다. 이준 목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도무지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웃고, 통행료 2불이 없어서 먼 산길을 돌아야 함에도 행복하다.

읽는 내내 긴장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험을 내지 못하고, 집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 스태프로 일하던 누군가가 마약에 취해 나타난다. ‘우주의 맨 얼굴’(256)은 죽음의 문턱에서 만나는 풍경 이었다. 진정 그들은 용사들이었다. 구원의 투구를 쓴 믿음의 용사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제목을 <용사들의 세대>로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분 다 글 솜씨 또한 훌륭하다. 몸으로 사역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글에 약해 사역이 투박한 것처럼 보이는 안타까움도 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읽는 내내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담아둔 문장

그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수많은 땀과 눈물을 쏟았는지 매일 지켜 보았습니다. p.41

예수님의 성품을 많이 가진 자가 이기는 겁니다. p.66

사역을 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순간, 그 사역을 향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과 기름 부으심은 끝나는 것입니다. p.77

때때로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나도 그냥 놔 버리고 싶습니다. 양손을 가볍게 휙 돌아서면 좀 더 쉬운 길있을까요?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p.144

풀과 같은 인생이나, 주께서 귀하다 하시고 사랑하시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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