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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국민일보

[기독교고전읽기] 이그나티우스의 <일곱편지>

by 하늘땅소망 2017. 9. 28.

이그나티우스의 <일곱편지>

 

*이글을 마이트웰브에 기고한 글입니다.


# 이냐시오스는 이그나티우스로 수정하여 읽었으면, 개신교가 자주 자용한 용어로 수정하였습니다. 


성육신 후 초대교회를 간략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예수님의 공생애를 지켜본 사도들의 시대, 사도들의 죽음 이후 사도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속사도의 시대, 속사도들과 엄격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속사도 이후 기독교를 변증하고 교리를 보존하기 위한 변증가들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시대별로 구분하면 니케아 이전 교부와 니케아 이후 교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역을 기준으로 하면 서방교부와 동방교부로 구분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사도시대-교부시대(속사도시대-변증가시대)

니케아 공의회 이전 시대 / 니케아 공의회 이후 시대

동방교부 / 서방교부

 

삼위일체교리를 확정했던 니케아 공의회(AD 325) 이전 교부들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지키고,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시각들을 변증하며, 교회 안에 침투한 이단들을 대항하는 삼중적 고통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니케아 이후의 교부들은 AD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이후의 기독교로 핍박과 이단이 거의 사라지고, 교리적인 사유가 깊어진 시대입니다.

 

교부문헌들을 살펴보면 니케아 이전과 이후의 문헌들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지만 기술방식이나 중요한 요점은 차이가 납니다. 니케아 이전, 즉 핍박이 있고,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극에 달했던 시대는 전통일치’, ‘거룩한 삶순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문헌들은 대체적으로 투박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며, 일관성이 결여 되어 있습니다. 마치 격식이나 치밀한 논리를 요하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 등에게 보내는 형식의 편지가 주류를 이룹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신학적인 논쟁보다는 공동체성에 보다 많은 관심과 현실적 필요, 도덕적 삶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속사도들은 로마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의 폴리갑, 헤르마스 등입니다. 이들은 사도들과 친밀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기독교 고전을 살펴보면서 가장 먼저 약간 후세대이긴 하지만 초대교회 교부 중 가장 중요한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가장 먼저 살폈습니다. 그 후론 초기 변증가에 속하는 터툴리안의 <그리스도의 육신론>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가장 초기 교부인 폴리갑의 <편지와 순교록>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폴리갑과 함께 활동했던 안디옥 감독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108?)<일곱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부문헌들은 가톨릭계열 출판사인 분도출판사 외에는 거의 출판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가톨릭식 용어, 즉 라틴식 이름보다는 영어식 이름으로 수정해 사용할 것입니다. 지명도 원작에 나타난 이름이 아닌 개신교에 익숙한 지명 또는 교회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지명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느님하나님으로 수정하여 인용합니다. 오늘 함께 읽게 될 이그나티우스의 <일곱편지>는 최초의 문헌인 로마의 클레멘트 <클레멘트 일서> 다음으로 두 번째 초대교회 교부문헌에 속하는 것입니다. 클레멘트의 저작은 아직 한글로 번역된 것이 없기에 이그나티우스의 <일곱편지><디다케>와 더불어 초대교회 최고(最古)의 문헌입니다. 자 이제 이그나티우스의 <일곱편지>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1. 이그나티우스의 생애

 

이그나티우스의 생애는 단편적인 전설로만 내려올 뿐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그의 이름 이그나티우스는 헬라어 이그나티오스의 라틴식 이름 이그나티우스(Ignatius)’입니다. 학자들은 그가 유대인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헬라식 이름인 이그나티오스가 아니라 로마식 이름인 이그나티우스가 원 이름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름의 뜻은 불 같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순교에 대한 열정과 기독론(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뜨거운 신앙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그는 모든 서신에서 자신을 테오포로스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을 지고 가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고 간다는 말은 자신 안에 하나님을 품고 있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전무합니다. 비잔틴의 성인전에 내려오는 전설로는 그가 마태복음 18:2-5에 기록된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그 때,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높은 사람입니까?"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부르시더니 제자들 앞에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와 같은 어린아이를 환영하는 사람은 나를 환영하는 것이다."(아가페 쉬운성경)

 

사막의 성인으로 불리는 히에로니무스는 이그나티우스가 젊었을 때 베드로와 바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사도 요한의 직제자였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교부들의 진술은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상당히 권위 있는 감독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감독으로 있었던 안디옥 감독의 시절도 침묵에 잠겨있습니다.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의 후계자였고, 유세비우스는 안디옥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에보디우스가 사망한 후 이그나티우스가 제2대 안디옥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순교의 열망과 사도의 전통을 지키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증거 했다는 이유로 로마로 압송되어 맹수형에 처해져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그나티우스 순교 후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은 서머나 교회 감독으로 있던 폴리갑에게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을 베껴서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읽혀지게 됩니다.

 

2. 편지를 쓰게 된 동기

 

하나님을 증거 했다는 이유로 맹수형에 처하게 된 이그나티우스는 안디옥에서 체포되어 열 명의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로마로 압송당합니다. 압송 경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안디옥-셀레우케이아-길리기아 또는 밤빌리아 해안-빌라델비아-서머나-드로아-네압볼리-빌립보-마게도냐해안-로마

 

이러한 경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일부러 로마로 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여러 곳을 방문하고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김광채 교수는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하나는 압송 경로와 시간이 길어질 경우 순교열이 식어지고 살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럼 교회는 존경할만한 지도자를 잃게 되고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러 곳에서 교회 감독이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기독교인들이 공포와 절망감, 무력감에 휩싸이게 되어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로마로 압송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그나티우스는 교인들에게 자신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고 당부하기에 이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석방되기 보다는 순교를 열망했습니다.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어 가면서 모두 7통의 편지를 씁니다. 4통은 서마나에서, 나머지 3통은 드로아에서 씁니다. 초기 4통은 <에베소서> <마그네시아서> <트랄레스서> <로마서>이고, 드로아에서 쓴 세통은 <빌라델비아서> <서머나서> <폴리갑서>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편지를 통해 각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제시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편지는 후에 순교하게 되는 서머나 감독이었던 폴리갑에게 씁니다.

 

3.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 나타난 사상과 내용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는 두드러진 몇 가지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일치로의 열망이고, 두 번째는 가현설에 대한 경고, 세 번째는 순교에의 열망입니다. 네 번째는 성찬에 대한 관심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이그나티우스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인 군주적 감독제입니다. 군주적 감독제는 첫 번째 특징인 일치로의 열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 교회는 하나입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이유가 하나님을 전했다는 이유 말고도 교회 안의 분쟁으로 인한 결과일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합니다. 정확한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한 2세기 중반의 경우 교회는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외부적으로 로마의 박해가 지속적으로 계속되었고, 안으로 이단으로 인한 교회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편지를 통해 교회가 분열하는 것은 사단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마그네시아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과 영에서 오는 일치가 이 교회들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가장 귀중한 것인 믿음과 사랑에서 오는 일치,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아버지에게서 오는 일치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마도 마그네시아 교회는 타교회 비하여 심각한 분란이 일어난 것을 보입니다. 이러한 분열은 거짓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교만, 유대교에 대한 잘못된 숭상으로 인한 것들이었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자들은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분열과 분노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까지 말합니다.(빌라델비아서 중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말한 키프리아누스와 상당히 닮아 있음을 발견합니다. 교회는 진리의 담지(擔持)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이그나티우스는 확신하고 있는듯합니다.

 

2) 가현설을 거부해야 합니다.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깊이 스며들어왔습니다. 초대교회 이단가운데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의 주요한 이단논박의 대상은 다름이 아닌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가현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으로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지 않고 가현(假現)즉 거짓으로 나타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가현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인할 뿐 아니라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 속죄설을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신성과 사람의 인성이 함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이론으로 확립하게 이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으며,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르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귀를 막으십시오.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시고 마리아에게서 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먹고 마시셨으며 참으로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을 당하셨고,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것들이 보이는 앞에서 참으로 십자가에 못박히고 돌아가셨습니다.”(<트랄레스서> 중에서)

 

서머나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참으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고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육신을 지니셨음을 알고 있으며 또한 이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 완전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의 가현설에 대한 반박은 진리를 담지한 교회로서의 일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3) 감독을 중심으로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이후의 가장 초기의 교부에 속합니다. 1세기 중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는 이그나티우스가 살았던 시대는 교회의 분열에 홍역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가 편지를 썼던 이유는 교회 안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교회의 일치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교회 일치는 감독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주교를 제쳐두고 세례를 주거나 애찬을 행하지 마십시오.”(<서머나서> 중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감독은 주님과 같은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에베소교회에 감독을 주님처럼 여겨야 할 필요가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그나티우스가 감독직 강조한 이유는 거짓교사들과 이단들로 인해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파괴하는 자들이며, 육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마그네시아 교회에는 젊은 감독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마그네시아 교회에 이렇게 충고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감독이 젊다는 점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아버지 하나님의 권능에 따라 그를 존경해야 합니다. ... 그렇게 하는 것은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감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감독을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유난히 마그네시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일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심각한 분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보편교회’(Catholic Church)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합니다.

 

4) 성찬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바울이 편지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애찬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애찬과 성찬이 묶여있었던 초대교회의 공동식사는 공동체의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식사와 성찬을 겸한 애찬은 분명히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교부 중 처음으로 성찬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는 에베소교회에 성찬에 대해 불사의 약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해독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로마교회에는 자신의 순교열정을 피력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빵, 곧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리고 그분의 피, 곧 썩어 없어지지 않을 사랑을 음료로 마시기 원합니다.”

 

이그나티우스의 성찬 의식에는 신앙생활 전부가 담겨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 고난과 부활의 의미가 성찬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 덩이의 빵을 나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진리가 하나이고,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치와 성찬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서마나 교회 편지에는 이단자들의 두 가지 잘못을 지적합니다. 하나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찬과 기도를 멀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사랑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곧 과부, 고아, 고통 받는 이, 옥살이하거나 감옥에서 나온 이, 굶주리거나 목마른 이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단들은) 성찬과 기도를 멀리합니다. 저들은 성찬이 우리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찬이야 말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의 살아요, 아버지께서 자비로 일으키신 그리스도의 살인데도 말입니다.”

 

4. 나가면서

 

이그나티우스는 속사도 교부 중에서 독특하고도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이단들에 대한 논박뿐 아니라 교회를 지키기 위해 감독을 중심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유대교의 허상을 파헤칠 뿐 아니라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논합니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순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전설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직접 예수님을 뵈었고, 사도들과 친밀했으며, 어지러운 시기에 안디옥 감독으로 살아가다 순교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사도들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앞으로 이어진 교회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를 통해 니케아 공의회 이후 나타난 중세교회의 형태가 씨앗의 형태로 숨겨져 있는 것을 봅니다. 역사는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가 어떻게 자라고 변화를 일으킬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뿌려놓은 삶의 흔적들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루하루를 꿰어 역사를 만듭니다.


일곱 편지
국내도서
저자 : 이냐시오스 / 박미경역
출판 : 분도출판사 200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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