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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나의 선생님들]

by 하늘땅소망 2017. 8. 26.

나의 선생님들

2017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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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명강사

두말하면 잔소리다. 거두절미하고 그녀는 명강사다. 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친다. 고작 3일째인데 학교에서 두 달 이상 배울 내용을 순식간에 가르친다. 그것도 즐거운 비명과 행복한 미소, 그리고 절대 재우지 않는 독설과 함께. 자칭 일본어 중급이라 여기는 나에게... 놓은 지가 벌써 십수 년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 거리지만... 그녀는 탁월한 명강사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찬주에게 가르칠 것들을 파일로 만들어 집약적으로 가르친다. 3년 배울 내용을 불과 여섯 달이면 끝낼 기세다. 그녀는 늘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하지만 반대다. 탁월한 아내를 둔 남편은 으레 기가 죽어 있던지, 거꾸로 허세를 부린다. 난 후자일 것이다. 그녀는 참으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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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처럼 바보가 되자.

우리 집은 카무네 집니다. 오늘 무선공유기를 거실로 빼고 이름은 'kamu house'로 정했다. 카무는 물다는 일본어지만 난 항상 그녀?'떨구리'로 부른다. 똥을 싸도 덮을 줄 모르고, 안아도 안길 줄 모르고, 오줌도 이곳저곳 아무렇게 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가씨는 그러면 안 된다고 일러 주어도 막무가내다. 그런데 어찌나 호기심이 많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지 아무에게나 아는 척? 하고, 사람 곁에 머문다. 생각이 없는 듯하면서도 사랑을 받는 묘한 아가씨다. 카무는 나의 선생님이다. 늘 예민하고 치밀한 척만 하는.. 사실은 아니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카무는 떨구리처럼 보이지만 사람에게 사랑받는 법을 아는 녀석이다. 바보 같아서, 부담이 없어서, 사람들은 카무를 좋아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과하게 똑똑하면 관계가 망가진다. 진정한 관계는 부족한 듯 명석하고, 연약한 듯 강직해야 한다. 나도 카무처럼 떨구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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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자전거 배우기.

막내는 초6. 어제부터 자전거를 배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탄 자전거. 어색하고 서툴이다. 뒤에서 필주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조금씩 타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멀리 나갔다. 내일은 더 전진하리라. 자빠지고 넘어지기를 수백 번. 다리에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보인다. 영광의 상처다. 성공은 수많은 실패라는 밑거름이 있기 때문이다. 시도하는 자만이 성공한다. 실패를 두려워할 수 있으나 시도한다면 마침내 성공할 것이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함으로 배운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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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시장 보기

일주일 동안 시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냉장고에 있는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다 꺼내 먹었다. 그리고 오늘 아내와 함께 남부시장에 들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협소한 장소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물건을 산다. 누군가는 사위가 왔을지도, 누군가는 몇 년 만에 유학 간 아들이 찾아왔을지도, 누군가는 평범한 하루의 저녁을 만들기 위한 것일 수도. 시장은 그렇게 사연과 사연이 만나고, 공급과 수요가 형성되어 삶이 영글어진다. 다섯의 아이들을 챙기는 아내의 손이 무거워진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살지 않았던 아내다. 우리 집은 무섭게 엥겔지수가 높아졌다. 한 끼의 식사는 판매와 소비라는 경제학적 용어로만 정의될 수 없다. 그곳에 실존의 기쁨과 존재의 행복이 잉여 된 시간과 함께 버무려질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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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기초가 거의 없는 아들을 위해 맨투맨 기초영어를 시작했다. 그런데 맨투맨 기초영어는 영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학생이 정리하기 위한 책이었다. 처음 영어를 배울 때 맨투맨 기초영어와 종합영어를 가지고 배웠다. 6번 정도 반복하며 배웠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내는 기초의 거의 없는 찬주를 위해 정치근의 <11100일 완성 기본영어>를 추천했다. 이 책은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중학생 총정리 문법이다. 인칭, 발음, 문장의 종류, 대명사 등등 가장 기초적이면서 핵심이 되는 문법을 다루고 있다. 책이 절판되는 바람에 보수도 책방 골목에 가서 찾아도 없었다. 사장님이 책이 들어오는 대로 택배로 보내 준다고 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어 나갔다. 예전의 기억이 가물가물 거리면서 정리가 되어간다. 나 또한 제대로 영문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지 상당한 도움이 된다. 조셉 주베르는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르쳐야 하니 배워야 하고, 가르치기 위해 배우다 보니 더 자세히 책을 보게 된다. 아들은 학생이 아니라 나의 선생님이다. 아들 덕분에 영문법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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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니 배울게 천지다. 가장 가까이 탁월한 학원 선생님이었던 아내가 버티고 있고, 귀요미 카무가 나를 가르친다. 막내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며 내가 배운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며 삶을 배운다. 아들을 가르쳐야 하니 또 배운다. 모두가 고맙고 귀한 선생님들이다. 그런데 애들이 왜 안 들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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