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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완벽주의에 작별을 고하다

샤마임 2017. 7. 10.

완벽주의에 작별을 고하다




일 중심의 사람이 있고, 관계 중심의 사람이 있다. 관계 중심의 사람은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관계 중심의 리더라면 항상 팀원들의 마음의 상태를 살핀다. 힘들어하지 않은지,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다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핀다. 그에게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종종 무능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에 비해 일 중심의 리더는 성과와 효율 위주로 사람을 대한다. 사람을 판단할 때 일을 얼마나 정확하게 잘해 내느냐가 기준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숫자와 시간으로 판단한다.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빈틈없이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는 다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일을 제시간 안에 해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우리는 보통 독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또는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일 잘한다는 칭찬은 들으나 친구가 없고, 주변에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고독하다. 실력자, 전문가, 탁월하다는 말은 들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기계와 같고, 독한 사람이란 말을 듣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사람들은 갈망한다. 일도 잘하고 싶고, 주변 사람들을 잘 대하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 필자와 같이 일 중의 사람들은 더욱더 사람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완벽주의자는 존재하는 것일까?


완벽주의 (完璧主義)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완벽주의는 하나의 생각으로 모든 일을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완벽주의가 나쁜 것일까? 아니다. 완벽주의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열정이며, 성실함이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완벽주의라는 말속에 사람이 아닌 일만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활동으로만 자신을 규정한다. 그래서 자신의 무력함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 모습을 스스로 진정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나 진정한 친구관계도 삐걱거릴 때가 많다.”(23)


처음 <완벽주의에 작별을 고하다>는 제목에 약간의 반감을 가졌다. 완벽주의를 오해한 탓이다. 내가 아는 완벽주의는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완벽주의 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유혹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완벽주의자의 특징의 하나는 모든 것을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약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쩔 줄 몰라 한다. 1부에 소개된 P 부인은 정확하게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헌신적이고 봉사정신도 뛰어나다. 교회 안과 지역 사회에서 그녀의 역할을 도드라진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감당한다. 그녀는 편하게 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칭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언제나 자신의 실수에 더 집착한다. 누군가 자신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26)고 생각한다. 그녀가 정말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실수하는 것이다. 남들이 해 놓은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이 엉성하게 해 놓은 일에 화가 치밀기 때문에, 차라리 직접 하는 게 백번 낫다’(29)고 생각한다. 그녀는 친구와 대화하면서도 머릿속은 일로 가득 차 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정말 바쁘시네요.’. 그러나 그녀는 외롭고 힘들고 피곤하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겹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P 부인과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전문가 또는 탁월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그것이 모두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린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1부에서 완벽주의에서 완벽주의가 무엇인지 왜 완벽주의가 위험한지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완벽주의 성향을 갖게 된 이유를 탁월한 재능과 두드러진 능력’(65) ‘맏이’(66) ‘엄한 가정교육’(67) ‘어린 시절의 혼란스러운 경험들’(68) 등이다. 개인적 성향과 환경적 요소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완벽주의는 누군가로부터 받아 보지 못한 사랑과 응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비판과 책임 추궁 등이 완벽을 추구하도록 만든 것이다.


2부에서는 참된 나를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3부에서는 완벽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비결을 알려 준다. 흥미로운 것은 참된 나의 발견은 일부의 나가 아닌 전체적인 나’(79)로 사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는 완벽하다. 그러나 전체로 본다면 모두가 흠이 있고, 연약한 점이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할 수 있어도 다른 부분에서는 무능할 수도 있다. 운전을 잘하지만 설거지는 못할 수 있다. 수학은 잘 풀어도 영어는 잘 못할 수 있다. 농구는 잘하지만 탁구는 못할 수 있다. 전체인 나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까지 모두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저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는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하나님께서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네 모든 면을 다 아울러 전체적인 너 자신으로 살아라. 너를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솔직히 드러내어라. 네 삶의 몇 부분만이 아닌 전체를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내어드리라.”(87)


인격적인 성숙은 자신의 그림자, 즉 지우고 싶은 아픈 추억이나 약점, 무능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속된 성공은 교만하게 한다. 실패나 약점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게 하며 겸손하게 만든다. 일부는 완전할 수 있으나 전체에서 우리는 언제나 죄인이다. 치유는 자신을 직면할 때 시작된다. 완벽주의자는 어떤 면에서 자신을 직면하지 않거나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이 가진 두려움과 불면증은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실수한다.’(117) 한 번의 실수로 나의 전체가, 내 삶의 전부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해도 가치 있는 존재다. 하나님은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완벽주의자는 끊임없이 그 실수에 집착하며 자책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수도 기꺼이 용납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마음속에서 하고 큰 돌이 하나 내려앉았다.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다. 늘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종종 무너지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왜 내가 그리 마음이 조급하고 불평이 많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꺼이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 인정하자. 난 부족하고 실수 많은 인간이다. 그래도 가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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